삼현사

삼현사

[ 三賢祠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 있는 사당으로 유몽인·유숙·유중교를 향사한다.
삼현사

삼현사

조선시대 중기와 후기의 문신인 유몽인, 유숙, 유중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삼현사는 원래 삼현영당(三賢影堂)이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었는데 처음 세워진 시기는 알 수 없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가 1958년 이 지방의 고흥유씨 문중에서 가묘로서 복원하였다.

덕수문(德修門)이라는 현판이 걸린 5칸 규모의 문을 통과하면 정면 4칸·측면 3칸 규모의 영모재(永慕齋)가 정면에 있고, 그 왼편으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 사우(祠宇)가 있다.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어우야담>, <어우집> 등의 문집을 남긴 설화문학의 대가였다. 왕세자에게 글을 가르치는 세자시강원문학이었으며, 광해군 때 예조참판·이조참판에 올랐다. 인조반정 후 대역모사건에 연좌되어 아들 유약(柳瀹)과 함께 사형되었고, 정조 때 복권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라남도 고흥군의 운곡사(雲谷祠)와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의 청절사(淸節祠)에도 향사되어 있다.

유숙(柳潚 1564~?)은 유몽인의 조카이며 덕행과 충효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부제학에 이르러 영주군(瀛州君)으로 봉해지고 그 뒤 대사간과 형조참판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다. 고흥유씨의 집성촌인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의 가정사(柯亭祠)에 향사되었다.

평생을 학문에 정진했던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유중교(柳重敎 1821~1893)는 <태극도설>, <대소학설> 등의 저서를 남겼는데 중국에 있는 4개의 사당에 그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삼현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비봉면사무소로부터 차로 2~3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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