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당

저한당

[ 抯韓堂 ]

요약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는 윤봉길 의사가 성장한 집.
저한당 실내

저한당 실내

지정종목 사적
지정일 1972년 10월 14일
소재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산40-1번지
시대 조선
종류/분류 건물
크기 면적 147,072㎡

윤봉길 의사가 4살 때부터 중국으로 망명했던 1930년 이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저한당'이라는 이름은 '한국을 건져 내는 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에 속해 있으며 이 사적지에는 윤봉길 의사가 태어나서 4살 때까지 살았던 광현당(光顯堂)도 함께 있다. 윤봉길 의사는 일제시대였던 1932년 4월29일 일왕의 생일 기념식이 있었던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紅口]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 상하이파견군 대장 등을 즉사시킨 독립운동가이다. 국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5년에 기념탑을 세우고 1968년에는 충의사를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윤의사의 생가, 성장가 등을 복원하였고 유물전시관과 농촌계몽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을 세웠다.

카테고리

  • > > >
  • > > >
  • > > >

관련동영상

저한당 예산군에 있는 윤봉길의사가 살던 집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윤봉길의사가 살던 집으로 1972년까지 윤의사의 유족들이 기거하였으며 1976년 새로 중수하였다. 윤봉길의사 유적지 내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라는 뜻의 저한당은 4세 때부터 중국으로 망명을 떠난 1930년 이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태어나 4세까지 살던 광현당은 유적지 내에 따로 위치한다. 초가지붕과 나무 문으로 지어졌으며 내부 방바닥에는 짚을 엮어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어 당시 가난했던 윤의사 가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윤의사의 초상화가 걸린 야학방이 있는데 이곳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 농촌계몽운동의 일환으로 글을 모르는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쳤던 방이라고 알려져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