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시오 10세

인노첸시오 10세

[ Innocentius X ]

요약 제236대 교황(재위 1644. 9. 15∼1655. 1. 7). 베스트팔렌 조약을 폐기했다. 합스부르크 왕가에 호의적이어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에스파냐 편을 들었다. 족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 재임 기간 동안 권위를 상실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교황 인노첸시오 10세

출생-사망 1574. 5. 6 ~ 1655. 1. 7
재위기간 1644년 ~ 1655년
본명 지오반니 바티스타 팜프힐리(Giovanni Battista Pamphili)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로마

(Rome) 출신이며, 젊은 시절에 을 공부하였다.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 때 로타(Rota)의 교회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5세(Gregorius XV)의 사절로 (Napoli)에 파견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는 그를 에스파냐와 의 대사로 임명하였다. 1626년에 이 되었다. 1644년 9월 15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인노첸시오 10세를 지지한 추기경들은 전임 우르바노 8세의 반대 세력이었다. 신임 교황은 그들의 뜻에 따라 유럽의 평화를 가져온 을 폐기하였다.

인노첸시오 10세는 친척들의 문제로 명망을 잃었다. 그 역시 족벌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친인척을 측근으로 임명하였다. 특히 죽은 형의 아내인 도나 올림피아 마이달키니(Donna Olimpia Maidalchini)의 영향력은 교황의 임기 동안 계속되었다. 인노첸시오 10세는 에스파냐의 합스부르크왕가에 호의적이었다. 그 때문에 의 독립에 회의적 태도를 보였으며,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에스파냐의 편을 들었다.

또한 교황은 친척인 바르베리니의 재산을 몰수하였다. 그는 (Paris)로 건너가 추기경 마자랭(Mazarin)에게 의지하였으나 교황은 포기하지 못하였다. 마자랭이 군대를 모아 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서야 교황은 바르베리니에게서 손을 땠다. 한편 와 사이에 교리 논쟁이 벌어지자 얀선주의 쪽을 비난하였다. 인노첸시오 10세의 재임기간 동안 교황은 권위를 상실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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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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