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백

최영백

[ 崔榮百 ]

요약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의 항일 학생 비밀결사인 다혁당(茶革黨)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른바 대구사범학교 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출생-사망 1921.6.8 ~ 2005.7.19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북 청주
주요수상 대통령 표창(1963), 건국훈장 애족장(1990)

1921년 6월 8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1년 2월 15일 동급생 권쾌복(權快福)·유흥수(柳興洙)·이주호(李柱鎬)·배학보(裵鶴甫)·문홍의(文洪義)·최태석(崔泰碩)·박호준(朴祜儁) 등 15명과 함께 항일 학생 다혁당(茶革黨)을 조직하였다.

다혁당은 대구사범학교의 항일 학생 조직인 문예부(文藝部)와 연구회(硏究會)를 계승 발전시켜 확대·개편한 조직이다. 문학·미술·학술·민족운동 등 각 분야의 실력 양성을 통해 조국의 독립을 촉진하는 데 목적을 두고, 교내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폭넓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조직은 당수·부당수 아래 총무부·학술부·문예부·연구부·경기부 등 각 부서를 두었다. 최영백은 다혁당의 총무부장을 맡아 같은 해 3월부터 5월까지 세 차례의 모임에 참가하는 한편, 당의 조직 확대, 일본 학생과 조선인 학생의 민족 차별대우 철폐 등 항일 학생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다 1941년 8월, 역시 대구사범학교 학생 비밀결사인 윤독회(輪讀會)의 간행물《반딧불》이 일본 경찰의 손에 들어가면서 이 학교의 비밀결사도 모두 드러나고 말았다. 이 사건이 바로 대구사범학교사건으로, 관련자 전원이 되어 이 가운데 35명이 기소되어 옥고를 치렀다.

최영백 역시 이 때 체포되어 2년간 미결수로 있으면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1943년 11월 2년 6월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애족장을 받았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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