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2세

베네딕토 12세

[ Benedictus XII ]

요약 제197대 교황(재위 1334. 12 .20∼1342. 4.25). 최후의 심판 뒤에 하느님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지복직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비뇽에 교황궁을 지었고 교회와 수도회 개혁에도 힘을 기울였으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막지 못한 오점을 남겼다.
아비뇽 교황청

아비뇽 교황청

출생-사망 ? ~ 1342. 4. 25
재위기간 1334년 ~ 1342년
본명 Jacques Fournier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프라스 사베르댕

의 사베르댕(Saverdun) 출신이다. 불본(Boulbonne)에서 시토회의 수사가 되었으며 (Paris)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땄다. 1311년에 프랑스 퐁프루아드(Fontfroide)의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이 되었다. 1317년에 파미에르(Palmiers), 1326년에 미르푸아(Mirepoix) 교구의 가 되었다. 1327년 12월에 교황 요한 22세(Johannes XXII)로부터 으로 임명되었다. 추기경으로 있는 동안 자들을 엄격히 다루었고 신학자로서도 인정받았다. 1334년 12월 2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이 된 직후, 전임 교황의 지복직관(至福直觀)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지복직관은 하느님을 직접 보는 것을 말하는데, 요한 22세는 설교를 듣고 최후의 심판을 받은 뒤에야 지복직관을 허락받는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와 같은 교황의 주장으로 논란이 일어나자 베네딕토 12세는 1336년에 선한 자는 죽는 순간 하느님을 보게 된다는 내용의 칙서를 발표하여 분쟁을 해결하였다. 또한 교황은 수도회 개혁을 주창하였는데 그 조치가 너무 엄격하여 반감을 샀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이 로마에 직위를 돌려줄 것을 바랐지만 오히려 베네딕토 12세는 에 교황궁을 짓고 미술가를 동원하여 교회를 꾸몄다. 그리고 로마에도 기금을 보내어 교회를 수리하게 하고 전쟁 피해자들을 위로하였다. 베네딕토 12세는 교회와 수도회를 개혁하는 데 힘을 쏟았지만 그의 재위기간인 1337년에 시작된 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막지 못하는 오점을 남겼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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