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레스티노 5세

첼레스티노 5세

[ Celestinus V ]

요약 제192대 교황(재위 1294. 7. 5∼1294. 12. 13). 성인. 오랜 은수자 생활 끝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나폴리의 왕 카를로 2세에게 의지하였으며 아라곤과 나폴리, 프랑스와 잉글랜드 사이의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교황직을 스스로 사임했다.
출생-사망 ? ~ 1296.5.19
재위기간 1294년 7월 ~ 12월
본명 피에트로 디 모로네(Pietro di Morrone)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이탈리아 이세르니아

성인(聖人)이며, 축일은 5월 19일이다. 1209년 무렵 의 이세르니아(Isernia)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0세에 은수자(隱修者)가 되었다. 후에 (Rome)에서 로 을 받고 1246년에 베네딕토 수사가 되었다. 그후 몬테 모로네(Monte Morone)에서 5년 동안 은수 생활을 계속하였다. 더욱 엄격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몬테 마엘라(Monte Majella)로 가서 은수자 공동체를 만들고 다시 몬테 모로네로 돌아왔다. 1274년에 그가 만든 공동체는 첼레스티노수도회라는 이름으로 승인을 받았으며, 나중에 베네딕토수도회와 합쳐졌다. 전임 교황 니콜라오 4세(Nicolaus IV)가 세상을 떠난 후 정치적인 상황으로 2년 동안 교황 자리가 비어있었다. 1294년 7월 5일에 만장일치로 교황으로 선출된 첼레스티노 5세는 더 이상 교황직을 공백으로 둘 수가 없어 교황 선거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교황은 행정력이 부족하였고 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 왕 카를로 2세(Charles II)에게 의지하였으며, 그 결과 카를로 2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을 장악하게 되었다. 첼레스티노 5세는 과 나폴리, 와 사이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후 첼레스티노 5세는 계속 교황을 맡는 것이 교회와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생각하여 추기경들과 의논한 끝에 사임하였다. 1294년 12월 13일의 일이었으며, 스스로 물러난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가 처음이었다.

그는 수도원으로 돌아왔고 후임 교황으로 보니파시오 8세(Bonifatius VIII)가 선출되었다. 그러나 첼레스티노 5세의 지지자들이 그를 복위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그의 사임이 법에 따른 것이 아니므로 그를 감시하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결국 첼레스티노 5세는 은둔처로 돌아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는 (海)를 통해 달아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보니파시오 8세에게 송환되었다. 그후 아나니(Anagni) 근교의 푸모네성(城)에 갇혔으며 10개월 후 그곳에서 죽었다. 1313년 5월 5일에 성인으로 추증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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