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시오 5세

인노첸시오 5세

[ Innocentius V ]

요약 제185대 교황(재위 1276. 1. 21∼1276. 6. 22). 토마스 아퀴나스 등과 함께 도미니크 수도회의 학문에 관한 회칙 초안을 만들었다. 이탈리아에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했으며 십자군을 출범시켰다. 리옹에서 공의회를 열어 그리스 교회와 로마 교회의 통합을 도모했다.
출생-사망 ? ~ 1276.6.22
재위기간 1276년 1월 ~ 6월
본명 피에르 데 타랑테즈(Pierre de Tarentaise)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프랑스 타랑테즈

(福者)이며, 축일은 6월 22일이다. 1225년 무렵 의 타랑테즈(Tarentaise)에서 태어났다. 16세에 도미니크수도회에 들어가 수사가 되었으며, 성 요르단(St. Jordan)의 지도를 받았다. 1259년, 파리대학교에서 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였으며 총장까지 맡았다.

신학자와 설교자로 명성을 얻은 그는 (Arbertus Magnus), (Thomas Aquinas) 등과 함께 도미니크수도회의 학문에 관한 회칙 초안을 만들었다. 37세에 설교자회의 프랑스 관구장이 되었고, 그 조직에 포함된 모든 수도원을 걸어서 방문하였다. 1272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Gregorius X)가 그를 리옹(Lyon)의 로 임명하였다. 1273년에는 (Ostia)의 이 되었다.

1276년 1월 21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도미니크수도회 출신으로는 첫 교황이었다. 5개월 정도의 짧은 재위 기간에도 많은 일을 하였다. 인노첸시오 5세는 에 평화를 정착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교황을 지지하던 (黨)과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옹호하던 (黨)을 화해시켰으며, (Pisa)와 (Lucca)사이의 분쟁도 해결하였다.

또 합스부르크(Hapsburg)의 루돌프(Rudolph)와 (Anjou)의 샤를(Charles)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십자군을 출범시켰으며, 리옹에서 공의회를 열어 분열된 교회와 로마 교회를 통합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12세기 신학자 페트루스 롬바르두스의 《명제집(sententia rum livri)》에 대한 주석이 있다. 1898년 3월 13일에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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