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노첸시오 2세

인노첸시오 2세

[ Innocentius II ]

요약 제164대 교황(재위 1130. 2. 14∼1143. 9. 24). 대립 교황 아나클레토 2세 지지파들에 밀려 프랑스로 피신해야 했다. 교황은 시칠리아 왕 로제르 2세를 파문하여 이 분쟁을 끝냈다. 1139년 제 2차 라테란 공의회를 열었고 로마의 원로원 중심의 자치정부에 맞서 교회의 독립성 유지에 힘썼다.
인노첸시오 2세

인노첸시오 2세

출생-사망 ? ~ 1143.9.24
재위기간 1130년 ~ 1143년
본명 그레고리오 파라레스키(Gregorio Parareschi)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로마

출신이다. 교황 파스칼 2세(Paschalis II)로부터 으로 임명되었다. 1119년에는 교황 갈리스토 2세(Callistus II)가 에 사절로 보냈다. 1122년, 갈리스토 2세가 그를 보름스협약의 초안을 작성하는 대사로 임명하였다. 보름스협약은 교황과 의 (Heinrich V) 사이의 성직 서임권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협약이었다. 1123년에는 교황의 특사로 를 방문하였다.

1130년 2월 13일, 전임 교황 호노리오 2세(Honorius II)가 세상을 떠나자 추기경들은 인노첸시오 2세를 후임 교황으로 선출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추기경들은 피에트로 피에를레오니(Pietro Pierleone)를 새 교황으로 뽑고, 아나클레토 2세(Anacletus II)로 명명하였다. 인노첸시오 2세는 2월 23일에 축성을 받았지만, 반대파의 세력에 밀려 1130년 6월에 프랑스로 몸을 피하였다.

1132년 8월에 인노첸시오 2세의 설득에 힘입어 독일의 왕 로타르(Lothar)는 로 원정을 떠났고 1133년 6월에 로마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교황은 황제의 성직자 임명권을 인정한 보르스협약의 개정에 반대하였다. 로타르가 이탈리아에서 철수한 뒤, 다시 반대파들이 득세하여 교황은 다시 (Pisa)로 몸을 피했다.

1138년 1월에 아나클레토 2세가 죽자 그를 지지했던 시칠리아의 왕 로제르 2세(Roger II)는 빅토리오 4세(Victorius IV)를 대립교황으로 임명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인노첸시오 2세는 로제르를 파문함으로써 분쟁을 끝냈다. 1139년 4월에는 제2차 라테란 를 소집하였다. 교황은 을 교황 직속으로 만들고 규율을 제정하였다. 재위기간 후반에는 로마에서 중심의 자치정부가 수립되자 교회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143년 9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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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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