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오 2세

빅토리오 2세

[ Victorius II ]

요약 제153대 교황(재위 1055. 4. 16∼1057. 7. 28). 피렌체에서 공의회를 개최하여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결혼을 단죄했다. 이어서 리옹, 툴루즈에서 교회 회의를 열어 교회 개혁 조치를 확대했다. 어린 나이로 황제가 된 하인리히 4세의 고문 역할을 하며 교황권을 강화하였다.
출생-사망 ? ~ 1057.7.28
재위기간 1055년 ~ 1057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독일 슈바벤

(Schwaben)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의 황제 (Heinrich III)의 친척이라는 설도 있다.  1042년에 아이히슈테트(Eichstatt)의 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하인리히 3세의 최고 고문 역할을 맡게 되었다. 1 054년 4월 19일에 교황 레오 9세(Leo IX)가 세상을 떠나자, 하인리히 3세는 빅토리오 2세를 후임 교황으로 지명하였다.  약 1년 뒤, 1055년 4월 13일에  축성을 받았다. 교황은 6월에 피렌체(Firenze)에서 를 개최하였다. 여기서 성직을 사고 파는 행위와 성직자의 결혼을 단죄하였다.

1055년에는 리옹(Lyon)에서, 1056년에는 (Toulouse)에서 교회회의를 열고 교회 개혁 조치를 확대하였다.  1056년 10월 5일, 하인리히 3세가 세상을 떠날 때 머리맡을 지켰다.  새 황제 (Heinrich IV)가 나이가 어려 그 어머니 아그네스가 을 하였는데, 빅토리오 2세가 그 고문 역할을 하였다. 교황은 이를 이용하여 교황권을 강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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