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노리오 1세

호노리오 1세

[ Honorius I ]

요약 제70대 교황(재위 625.10.27∼638.10.12). 앵글로색슨족 선교에 힘썼다. 단성설과 단의설을 놓고 교회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된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은 개별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은 사후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이단 판정을 받았다.
출생-사망 ? ~ 638.10.12
재위기간 625년 ~ 638년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로마 캄파니아

로마 캄파니아 출신이다. 전임 교황 보니파시오 5세(Bonifatius V)의 뒤를 이어, 625년 10월 27일에 교황이 되었다. 교황이 되기 전의 이력은 알려져 있지 않다. 재임 기간 동안 족(族)에게 를 전파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Wessex) 지역에 비리노(Birinus)를 파견하여 하도록 하였다. 또한, 634년에는 요크의 주교 바울리노(Paulinus)와 캔터베리의 대주교 호노리오(Honorius)에게 팔리움을 주었다. 한편, 로마의 건축물을 보존하고 중요한 그리스도교의 건축물 복구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가 교황으로 재임하던 당시 로마 교회는 단성설(單性說)과 단의설(單意說)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이 되었다. 634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세르지오(Sergius)가 이러한 논쟁을 끝내자며 '하나의 의지(one operation)'라는 용어를 제안하였다. 호노리오 1세는 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은 개별적이라는 신앙고백을 이용하여 답변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을 금지하였다.

이와 같은 호노리오 1세의 입장은 그가 죽은 뒤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680년에 비잔티움제국 콘스탄티누스 4세(Constantinus IV)는 제3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의지가 두 가지라고 공포하며, 호노리오 1세의 그리스도 단의설을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또, 682년에 교황 레오 2세(Leo II) 역시 같은 이유로 그를 단죄하였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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