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

장준

[ 張埈 ]

요약 사회주의 운동가로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서기와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을 지냈다. 1932년 영동적색농민조합 결성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도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출생-사망 1895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운동
출생지 충북 영동

1895년 충청북도 영동에서 태어나 영동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임시토지조사국과 영동군청에서 일하였다. 1923년 2월 지주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하여 영동소작인상조회를 조직하였고, 그해 9월 소작인 이외의 무산자도 일치 단결하여 유산자에 대항해야 한다는 취지로 영동소작인상조회를 영동노농동맹회로 개칭하였다.

1924년 조선청년총동맹 서기에 선임되었으며, 1925년 3월 조선노농총동맹 상무집행위원이 되었다. 이듬해 4월 단체였던 서울콩그룹의 합법적인 기관인 전진회(前進會)가 각 부문 운동을 통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결성한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준비위원에 선임되었고, 1927년 7월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민족협동전선체인 (新幹會) 영동지회 창립준비위원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사상을 선전하였다는 이유로 장철··최판흥(崔判興)·추교경 등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었으나 1928년 무죄 판결로 석방되었다. 1930년 영동농민조합 위원장, 경제자립·국산품장려·소비절약 운동의 일환으로 발족한 영동소비조합 경리위원장이 되었으며, 1932년 영동적색농민조합 결성 사건으로 검거되어 김태수·최판흥·추교경 등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1944년 (呂運亨)이 결성한 항일비밀결사인 건국동맹에 동참하고 충청남북도 책임자가 되었다. 1945년 11월 전국 각 지역에 조직된 인민위원회 대표자들이 모여 조선의 완전독립, 미군정과의 관계, 기타 당면 문제를 심의하기 위해 개최된 전국인민위원회대표자대회에 충청남도 대표로 참석해 확대집행위원에 선임되었으며, 그해 12월에 결성된 외곽 단체이자 좌익 농민단체인 전국농민조합총연맹 중앙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1946년 2월 좌익 세력의 통일전선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이 되었고, 1948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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