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두환

손두환

[ 孫斗煥 ]

요약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군법국장, 임시정부 경무국장 등을 지냈다.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고, 광복 후에는 김규식이 이끄는 민족자주연맹의 정치위원이 되었다.
출생-사망 1895 ~ ?
별칭 손건(孫建)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주의 운동
출생지 황해도 은율

손건(孫建)이라고도 불리었다. 1895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1916년 [明治大學] 법과에 재학 중 상하이[上海]로 갔다. 1920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과 군법국장을 지낸 뒤 1922년 12월 상하이 교민의 친목단체인 한인구락부를 결성하였으며, 1924년 임시정부 경무국장이 되었다.

1927년 부관을 지내다가 4월 로 유학을 떠났다. 1933년 12월 [河南省] 뤄양[洛陽]에서 조직된 중국 중앙육군관학교 제7분교 한인특별반에서 학생 모집 및 특무활동을 벌였다.

1937년 발발로 일본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하자 항일운동 단체를 통일할 필요성이 커져 계열에서는 1937년 12월에 조선민족해방동맹·조선청년전위동맹·조선혁명자동맹·조선민족혁명당의 항일 민족연합전선단체인 이 결성되고, 계열에서는 9월 ···대한인국민회·대한인동지회의 항일 연합체인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가 결성되었는데, 이때 손두환이 이 두 단체의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1943년 조선민족혁명당 중앙집행위원 겸 선전부장, 1944년 대한민국임시의정원 의원 및 선전위원을 지냈다. 광복 직후 귀국한 뒤 1947년 5월 (呂運亨)이 사회노동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결성한 근로인민당 중앙감찰위원장에 선임되었으며,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좌우 정파 정치인들이 구성한 좌우합작위원회 위원이 되어 좌우합작에 힘썼다.

같은해 12월 (金奎植)이 주도한 민족자주연맹 정치위원에 선임되었으며, 이후 에 응하기 위해 월북하여 1948년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근로인민당 대표로 참가하였고, 그해 8월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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