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겸

김만겸

[ 金萬謙 ]

요약 사회주의 운동가로 러시아와 만주에서 주로 활동했다.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창립시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소련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체포되어 사망하였다.
출생-사망 1886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주의 운동
출생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1886년 러시아의 에서 태어나 1906년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한촌(新韓村)의 소학교 교사가 되었다. 1911∼19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된 러시아 신문 《달라카야오크라이나》('변경'이라는 뜻) 서울주재 특파원으로 파견되었는데, 이때 일제의 조선침략을 비판하는 기사를 집필하여 추방되었다.

1917년 에서 《청구신보 靑丘申報》를 발행하였으며, 1919년 2월 전로한족회중앙총회(全露韓族會中央總會)가 발전적으로 해체·개편된 대한국민의회 창립대회에서 부의장(김철훈이라는 주장도 있음)에 선출되었고, 1920년 5월 코민테른(인터내셔널_제3인터내셔널)에 의해 [上海]의 한인(韓人) 운동을 독려하기 위해 보이틴스키와 함께 파견되었다.

이듬해 5월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창립 대회에 참여하여 중앙위원에 선임되는 한편,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총장에 임명되었고, 이어 7월에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 상해지부 책임비서가 되었다.

1922년 12월 코민테른 극동총국의 민족부 산하에 설치된 꼬르뷰로(高麗局) 위원이 되었으며, 러시아의 (赤軍)과 반혁명세력인 백위군(白衛軍) 사이에서 벌어진 시베리아내전이 종식된 뒤 연해주소비에트 집행위원이 되었다. 에서 제명된 뒤 소련 경찰에 체포되어 복역하던 중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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