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용

김두용

요약 사회주의 운동가로 일본에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도쿄지부에 가담해 활동하였고 《예술운동》을 발행하기도 했다. 1930년 이후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 《우리동무》 편집인으로 활약하다가 체포되었다.
출생-사망 1903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주의 운동
출생지 함남 함흥
주요저서 《조선민족해방운동사》(1949)

1903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도쿄제국대학(지금의 ) 미학과를 중퇴하였으며, 재학 중 무산자를 기본으로 한 새 사회의 건설이 목적인 신인회(新人會)에 가입하였다. 1925년 5월 도쿄에서 (高景欽)·(李北滿) 등과 함께 무산자사를 조직하였고, 1927년 고경흠··이북만 등이 창립한 비밀항일결사인 제3전선사에 입회하였다.

1927년 귀국하여 함흥에서 열린 제3전선사 주최 강연회에서 "금후의 사회는 예술가도 자가 아니면 안 된다"라고 연설하여 중지되기도 하였다. 같은해 10월 도쿄지부에 가입하여 잡지 《예술운동》 편집 겸 발행인이 되었고, (朴憲永)·(金丹冶)·(林元根)·(曺奉岩)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회주의 청년단체인 고려공산청년회 일본부에 입회하였다.

1930년 4월 조선공산당재건협의회 사건 때 검거되었다가 1932년 2월에 출감하여 동지사(同志社)를 해체하고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에 가입하였다. 같은해 일본프롤레타리아문화연맹 기관지 《우리동무》 편집인이 되었으나 6월에 임철섭(林澈燮)·이의석(李義錫) 등과 함께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되어 도쿄공소원[東京控訴院]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35∼1936년 진보적 연극단체인 조선예술좌에서 활동하였으며, 1936년 7월 한글신문인 《조선신문》 사건에 관련되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거된 뒤 징역 1년 8월을 선고받았다.

광복 직후 귀국하여 ·조선문학가동맹·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가입하였고, 그해 10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재일본조선인연맹 결성에 참여하였다.

한편, 재건에 힘써 같은해 12월에는 일본공산당 조선인부 부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공산당 기관지 《젠에이 前衛》에 한국인 문제에 관한 여러 글을 발표하였다. 1947년 북한으로 갔으며, 1949년에 《조선민족해방운동사》를 공동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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