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석

강문석

[ 姜文錫 ]

요약 사회주의 운동가. 제주4·3사건 때 남로당 제주 총책임자이자 유격대 총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의 장인이다. 상하이 중국공산당 한인지부에 입당해 활동했으며 상해한인반제동맹을 결성했다. 광복 후 남조선노동당 중앙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출생-사망 1906 ~ ?
별칭 강문도(姜文道)· 황정(荒井)·산하(山下)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주의 운동
출생지 제주도 서귀포시대정읍

강문도(姜文道), 황정(荒井), 산하(山下)라고도 불리었으며, 1906년 제주특별자치도 남제주군 에서 태어났다. 1948년 4월 3일에 일어난 제주4·3사건 때 남로당 제주 총책임자이자 유격대 총사령관이었던 김달삼의 장인이다. 대정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1925년 4월 에 한남의숙(漢南義塾)을 설립한 뒤, 모슬포청년회 회원으로 민중계몽운동과 청소년운동을 벌였다.

1928년 4월 도쿄[東京]로 건너가 조선인 자와 교류하였으며, 전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약칭 全協)에 가입하여 화학노조 상임위원이 되었다. 같은해 10월 오사카[大阪] 히가시나리구[東成區]의 조선인 노동자와 함께 공장을 습격하였다가 11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으나 1931년 8월에 불기소 처분으로 석방되었다.

1931년 9월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한인지부에 입당하였으며, 1932년 (朴憲永)·(曺奉岩)·(金炯善)·(金丹冶) 등과 함께 상해한인반제동맹(上海韓人反帝同盟)을 결성하여 선전부장이 되었다.

1932년 10월 프랑스 조계(租界) 경찰에 홍남표(洪南杓)·조봉암 등과 함께 체포되어 국내에 투옥되었다가 일본에서의 항일운동 사실이 드러나 오사카공소원[大阪控訴院]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출옥하여 1939년에 박헌영이 결성한 조선공산당 재건 비밀조직인 경성콤그룹의 일원이 되었으며, 1941년 사상범예방구금령으로 청주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9월 조선공산당 서기국원 겸 선전부장에 선임되었다.

1946년 2월에 결성된 세력의 체인 민주주의민족전선 중앙위원에 선출되어 노동문제연구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46년 조선공산당을 대표하여 일본으로 건너가 한반도의 현안 문제에 관해 의논하기 위해 서기장 도쿠다 규이치[德田球一]와 회담하였다.

1946년 11월 ··조선공산당의 3당이 합당되어 결성된 남(약칭 남로당)중앙위원에 선임되었다. 1948년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으며, 1950년 10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사회부장이 되었다. 1953년 8월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에 선출되었으나 1955년 박헌영의 남조선노동당 종파사건에 연루되어 숙청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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