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항포해전

당항포해전

[ 唐項浦海戰 ]

요약 1592년(선조 25) 6월 5~6일과 1594년 3월 4일 두 차례에 걸쳐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

제1차 당항포해전과 제2차 당항포해전으로 나뉜다. 1차 해전은 1592년( 25)년 6월 5일부터 6일까지 이틀 동안, 2차 해전은 1594년 3월 4일 하루 동안 이루어졌다. 당항포는 지금의 경상남도 에 해당하는데, 로 보는 설도 있다.

제1차 당항포해전은 (李舜臣) 함대를 주축으로 한 조선 수군의 연합함대가 제2차 출전에서 사천·당포해전에 이어 세 번째로 치른 해전이다.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李億祺)의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元均)의 경상우수영 전선 3척 등 총 51척이 참가하였다. 총지휘는 이순신이 맡았다.

당포해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함대는 당포 앞바다에 정박해 전략 회의를 계속하면서 나흘을 머문 뒤, 주민들로부터 당항포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였다. 연합함대는 6월 5일 아침 안개가 걷히자마자 당항포로 진격하였다. 포구에는 왜군 대선 9척, 중선 4척, 소선 13척이 모여 있었다.

연합함대는 당항만 어귀에 전선 4척을 숨겨두고, 을 앞세워 일제히 공격을 가하였다. 조선 수군의 갑작스런 공격을 받은 일본 수군도 을 쏘아 대며 대응 태세를 취하였다. 이에 아군은 왜군의 육지 탈출 봉쇄와 주민 보호를 위해 왜군을 바다 한가운데로 유인한 뒤, 왜선을 포위하고 맹공을 가하였다.

왜선 대부분은 여기서 격침되었고, 도주하는 나머지 왜선들도 모두 추적해 불살랐다. 다만 도망친 패잔병들을 소탕하기 위해 한 척은 남겨 두었는데, 이 역시 이순신의 명을 받은 방답 (防踏僉使) 이순신(李純信)에 의해 6월 6일 새벽에 섬멸되었다.

제2차 당항포해전은 수륙 병진책이 무산된 일본 수군이 거제도 내륙을 오가며 살인·납치·약탈을 일삼던 1594년 3월 4일에 행해졌다. 아군 연합 전선 124척이 참가한 대규모 해전으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치밀하고 신속하며 정확한 전략으로 압승을 거둔 해전이다. 연합함대의 제6차 출전이자, 전투로는 12번째 해전이다.

3월 4일 새벽 이순신은 함선 20척을 거제도 견내량(見乃梁)으로 보내 수비하도록 하고, 동시에 전라좌수영과 경상우수영에서 각각 10척, 전라우수영에서 11척을 선발해 공격 함대를 편성하였다. 공격 함대의 사령관은 (魚泳潭)을 임명하였다. 이순신은 나머지 3군 함대를 이끌고 학익진(鶴翼陣)을 펼치며 함대 시위를 하는 한편, 다른 왜군의 지원과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한 준비까지 철저하게 마친 뒤 공격 명령을 내렸다.

왜군은 조선 수군의 완벽한 전략 앞에서 손 쓸 틈도 없이 일거에 무너졌다. 먼저 어영담 함대에 의해 10척이 격파되고 불태워졌다. 이어 나머지 21척도 당항만으로 진격해 들어간 아군에 의해 모두 불태워지고, 패잔병들은 전의를 상실한 채 육지로 도주하였다.

불의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대 편성, 신속한 기동력, 적 주력부대의 퇴로 차단 등 이순신의 용의주도한 전략이 돋보인 해전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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