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호

현준호

[ 玄俊鎬 ]

요약 일제 시대에 실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해동물산주식회사, 호남은행 설립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친일행위를 한 혐의를 받았다.
출생-사망 1889 ~ 1950
국적 한국
활동분야 실업인
출생지 전남 영암군

1889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서 출생하였다. 1906년 창평(昌平)의 영학숙(英學塾)에서 공부하였고, 서울 휘문의숙(徽文義塾)에서 신학문을 배웠다. 1912년 일본 [明治大學] 법과에 입학하여 당시 도쿄[東京]에 유학중이던 (金性洙), (宋鎭禹) 등과 교류하였다.

1917년 한국으로 돌아와 1919년 4월 아버지 현기봉(玄基奉)이 해동물산주식회사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20년 8월 호남은행을 설립하고 전무 취체역(取締役:지금의 이사)을 맡았으며 1925년 대표 취체역을 역임하였다. 1923년 민족교육과 민족간부 양성을 목적으로 한 민립대학설립운동(民立大學設立運動)이 일어나자 적극 참여하였다.

192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전라남도 평의회원이 되었으며, 1930년 중추원(中樞院) 주임 참의가 되었다. 1933년과 1936년 다시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고 농토를 확장하기 위하여 1933년 춘동간척사업, 1939년 서호간척사업을 벌였다.

1937년 7월 이 일어나자 의 지시로 전국을 돌며 시국강연을 하였고 1938년 8월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41년 친일단체인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 준비위원회 상무위원으로 일하였다. 8·15광복 이후인 1949년 친일혐의를 받고 에 출두하였으나 결백을 주장하여 불구속 처리되었다. 1950년 6·25전쟁중에 인민군에게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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