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시대

동주시대

동주(東周) 시대는 둘로 나누어 전반기를 춘추(春秋)시대, 후반기를 전국(戰國)시대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주의 동천부터 춘추시대로 보며, 전국시대는 한(韓), 위(魏), 조(趙)가 진(晉)을 3등분한 BC 453년, 혹은 주(周) 왕실이 이를 공인한 BC 403년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본다. 동주시대 시기 구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터 소왕(昭 王)·목왕(穆王)에 이르는 동안이 주왕조의 전성기였으나, 마침내 BC 9세기부터 안에서는 제후의 이반(離反), 밖에서는 (戎狄)의 침입이 잦아져 주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11대 선왕(宣王:靜)은 융적을 격퇴하여 한때 세력을 회복하였으나, 그의 아들 유왕(幽王)은 (褒姒)를 총애하여 내정이 문란해져서 견융(犬戎)의 침입을 초래하여 유왕은 살해되었다. 유왕의 아들 평왕(平王:宜臼)은 마침내 도읍을 성주(成周:河南省 洛陽 부근)에 옮기고 주왕조를 부흥시켰다. 이 평왕(平王)의 동천(東遷 : 기원전 770년) 이전을 서주(西周)라 하며, 그 이후를 동주(東周)라 불러 구별한다. 주(周) 나라가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낙읍(洛邑)으로 도읍을 옮긴 기원전 770년부터 진(晋)이 한(韓), 위(魏), 조(趙) 3국으로 분열된 기원전 403년까지를 춘추시대라고 하고, 그 이후를 전국시대라고 하는데, 일부 학자는 전국시대의 시작을 진(晉)의 대부(大夫)인 한(韓), 위(魏), 조(趙) 3가(三家)가 지가(知家)를 공략해 사실상 진을 3등분한 기원전 453년으로 앞당겨 해석하기도 한다. 춘추시대라는 명칭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에서 비롯되었다. <춘추>에는 노(鲁) 나라 은공(隱公) 원년(기원전 722년)에서 애공(哀公) 14년(기원전 481년)까지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춘추시대에는 제후 등의 이반으로 국내의 정정(政情)이 불안정하였고, 열국 간에 전쟁과 회맹(會盟)이 끊이지 않았으며, 제(齊)의 (桓公), 진(晉)의 (文公)과 같은 패자(覇者:覇는 伯과 같은 뜻이며, 大諸侯를 의미한다)가 회맹을 주재(主宰)하여, 중원(中原)의 질서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패자는 명목상으로는 주왕실의 권위를 존중하고, 주의 봉건질서를 적극적으로 허물어뜨리고자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BC 5세기에 들어서자, 여러 나라의 내부에서 하극상(下克上)의 풍조가 일어났으며  BC453년에 이르러서는 진(晉)이 한(韓), 위(魏), 조(趙)로 삼등분되었다. 그 기세에 눌려 주의 위열왕(威烈王)은 기원전 403년 한(韓),위(魏),조(趙)의 3씨를 정식으로 제후로 격상하는 것을 인정했다. 이렇게 진(晉)이 한(韓), 위(魏), 조(趙)로 삼등분된 것을 기점으로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시작된다고 본다. 전국시대에 주(周)의 왕은 낙양 부근을 영유하는 한낱 작은 제후에 지나지 않았고, 그것도 동서(東西)로 분열된 나머지 BC 256년에는 난왕(赧王)이 진(秦)에 항복하여 마침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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