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의 역사

가위의 역사

가위

가위

〈서양〉 제18 왕조시대에 청동제 가위가 있었으나, 가위의 날이 외향(外向)으로 달려 있어서 가위라고 하기에는 부적당하다. BC 1300~600년경의 문헌과 에는 양털을 자르는 가위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철제였다는 사실 외에 그 모양 등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유물로서 최초로 알려진 가위는 BC 10세기 후반의 것으로 대부분 철제이고 청동제는 드물다. 두 날의 받침점이 손으로 누르는 부분, 즉 힘점보다도 뒤에 있고, 지점이 되는 부분이 V자 모양의 용수철로 된 형태가 오래된 것이다. 시대 플리에네의 것 등이 가장 오래된 확실한 예가 된다.

시대의 유물은 많이 발견되었다. 이 시대 가위는 라텐 문화 중기에 중부 및 등으로 전해졌다. 이 모양으로 된 것은 후에 에서 뒤끝 부분의 용수철이 달걀형으로 부푼 모양으로 되었다가, 다시 원형으로 발달하였다. 라텐 문화의 가위는 남자의 무덤에 되어 있었는데, 양털을 깎기 위한 것이 아니고 수염을 깎는 데 쓰인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로마 시대의 유물에서 발견된 날이 짧고 튼튼하게 만들어진 가위는 철사를 자르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동양〉 후한(後漢)에서 송(宋)에 이르는 시대의 무덤 부장품으로 두 날의 뒤끝이 용수철로 된 철제 가위가 비교적 많이 출토되고 있다. 의 가위는 앞서 말한 각 시대를 통하여 뒤끝의 용수철이 8자형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며, 시대에 따른 형식의 변화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용수철 부분이 V자형으로 된 것은 현재 [四川省] 육조시대 전반(前半)의 무덤에서 출토된 예가 하나 알려져 있을 뿐이다.

2개로 이루어진 가위 날의 위치가 손으로 누르는 부분(힘점)의 뒤에 있는 형식과 날과의 중간에 있는 형식은 현재 알려진 유물로는 당나라 때의 것이 최초이다. 이들 무덤에 부장된 가위는 [長沙] 계화원(桂花園)의 여자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점토판을 구워서 만든 ‘동진(東晉) 승평(升平) 5년(361)’이라 기록된 부장품의 리스트에 바늘 및 그밖의 재봉구와 나란히 ‘전도(剪刀)·척일구(尺一具)’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재봉용임을 알 수 있다. 뒤끝이 8자형의 용수철로 된 가위는 [洛陽] 부근의 전한말(前漢末)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위가 서양의 가위와 달리 독자적으로 중국에서 발명되었는지, 또는 서양에서 전해졌는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 중국의 것이 서양의 것보다 출현한 시기가 늦고, 원리는 양자가 공통적이라는 사실에서 서양에서 전해졌을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에서 현재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가위는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서, 가위의 형태·재료·용도 등으로 보아 모두 중국을 거쳐 전래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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