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학순

지학순

[ 池學淳 ]

요약 한국의 가톨릭교 주교, 민주화·평화·인권 운동가. 평생을 지역사회 문화활동, 노동자 교육, 반독재 및 부정부패 척결운동, 양심수 석방 및 민주화운동, 인권보호운동 등에 힘썼다. 특히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유명하다. 그의 사후,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만들어져 그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출생-사망 1921.9.9 ~ 1993.3.12
본관 충주
별칭 다니엘(세례명)
국적 한국
활동분야 종교·평화·인권
출생지 평남 중화
주요저서 《내가 겪은 공산주의》(1976), 《정의가 강물처럼》(1983)

본관은 충주(忠州), 은 다니엘이다. 1921년 9월 9일 평안남도 중화(中和)에서 태어나 1934년 영세를 받았다. 1949년 3월 함경남도 덕원신학교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5월 공산정권에 의해 학교가 폐쇄되자 월남을 시도하다 체포되어 해주에서 수감생활을 하였다. 이듬해 1월 다시 월남을 시도해 성공한 뒤 서울 가톨릭신학대학에 편입하였으나 발발로 학업을 중단하고 국군에 지원 입대하였다가, 1952년 강원도 횡성전투에서 부상을 당해 전역하였다.

같은 해 12월 로 된 뒤 거제포로수용소교회 종군신부, 청주 북문로성당 보좌신부를 지냈다. 1956년과 1959년에 각각 로마 프로파간다대학교 대학원에서 교회법 석사·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후에는 천주교 청주교구장 비서(1960), 부산 초장동천주교회 주임신부(1962)를 거쳐 1967년 원주교구 창설과 함께 교구장으로 임명되면서 주교로 서품되었다.

그해 9월 원주에 진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 육영사업을 시작한 이후 평생을 지역사회 문화활동, 신용협동조합운동, 수재민 구호활동, 노동자 교육, 반독재 및 부정부패 척결운동, 석방 및 민주화운동, 퇴치운동, 인권보호운동 등에 힘썼다.

특히 1974년 7월 6일 위반혐의로 연행되었다가 하루 만에 풀려난 뒤, 7월 23일 은 무효라는 양심선언으로 다시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구속과 함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결성되었고, 이듬해 국내외의 석방운동에 힘입어 출옥한 뒤에도 사회활동은 끊이지 않았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한국위원회 이사장(1972), 한국노동교육협의회 회장(1973), (金芝河:본명 김영일) 구출위원회 위원장(1977), 한국 가톨릭결핵사업연합회·가톨릭맹인선교회·가톨릭아동복지협의회 담당주교(1983~1984), 남북한 장애인걷기운동본부 본부장(1991) 등을 지냈다.

저서로 《내가 겪은 공산주의》(1976), 《정의가 강물처럼》(1983)이 있으며, 1997년 그의 뜻을 잇기 위한 지학순정의평화기금이 만들어져 매년 정의평화상이 수여되고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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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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