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중

이양중

[ 李養中 ]

요약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문신. 고려수절신의 한 사람으로, 태종 이방원도 그의 뜻을 꺾지 못하였다. 그가 살던 산을 고지봉(高志峰), 그 마을을 고덕리(高德里)로 부른 데서 오늘의 고덕동(高德洞)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출생-사망 ? ~ ?
본관 광주(廣州)
자정(子精)
석탄(石灘)
활동분야 정치

본관은 광주(廣州), 자(字)는 자정(子精), 호는 석탄(石灘)이다. 출생지나 생몰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수절신(高麗守節臣)의 한 사람이다. 고려 말에 (刑曹參議)를 지냈으나, 이 개국한 후에는 고려 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벼슬을 하지 않고 지금의 서울특별시 고덕동(高德洞)에 은거하면서 자연을 벗하며 학문에 힘썼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이방원(李芳遠)과 친구로 지냈는데, 태종이 즉위한 뒤 한성부윤(漢城府尹)으로 임명하였으나, 벼슬을 받지 않았다. 이후에도 태종이 여러 차례 그의 은거지를 찾았으나, 한결같이 평복 차림에 직접 빚은 술로 대접하면서 벼슬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태종도 고려 왕조에 대한 이양중의 뜻을 꺾지 못하였다.

죽은 뒤 고덕동에 묻혔다고 하는데, 기록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가 고려 왕조에 대한 지조를 지키며 숨어 살았기 때문에 그의 뜻을 기려 그가 살던 산을 고지봉(高志峰), 그 마을을 고덕리(高德里)로 부른 데서 오늘의 고덕동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1667년( 8) 한양에 구암서원(龜岩書院)이 설립되면서 이 곳에 제향(祭享)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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