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시 요시오

오이시 요시오

[ Oishi Yoshio , 大石良雄 ]

요약 일본의 에도 시대에 활동한 무사. 아카호의 영주 아사노 노리나가가 할복자살하고 가문이 해체되며 가신들도 뿔뿔이 흩어지자 그는 아코의 무사 47명과 함께 주군의 복수를 맹세하고 원수를 갚았다.
오이시 요시오

오이시 요시오

출생-사망 1659 ~ 1703
별칭 오이시 구라노스케
국적 일본
활동분야 무사
출생지 아코

오이시 구라노스케[大石內藏助]라고도 한다. 1659년 아코[赤穗;지금의 고베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15세 때 아버지를 잃고 집안을 이어받았으며, 작은아버지의 후견 아래 한[藩;주민통치기구]에서 일하다가 21세 때 중신의 자리에 올랐다.

1701년 3월 14일 의 를 접대하던 아코의 영주 아사노 노리나가[淺野長矩]가 기라 요시나카[吉良義央]가 의전(儀典) 문제를 트집잡아 자신을 모욕하자 그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혔다. 그 일로 인해 노리나가는 할복자살하고, 그의 은 해체되었으며, 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아코의 무사 47명과 함께 주군의 복수를 맹세하고, 세상의 이목을 피하려 불량배 행세를 하면서 비밀리에 계획을 수립하였다.

1702년 12월 15일 47명의 낭인(浪人)과 함께 요시나카의 집에 잠입하여 그의 목을 벤 후 센가쿠지[泉岳寺]에 있는 주군의 묘 앞에 바쳤다. 무사들은 곧 자수하여 각지로 흩어져 수감되었다가 1703년 (幕府)의 명에 따라 모두 할복자살하였다. 당시 45세였던 그도 이때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시신은 그의 유언에 따라 주군이 안치되어 있던 센가쿠지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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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 충신의 묘

47인 충신의 묘 47인 충신의 묘. 항상 참배 객이 끊이지 않는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