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태

유진태

[ 兪鎭泰 ]

요약 일제강점기 민족교육운동 단체인 조선교육회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교육제도 개선, 지방 순회강연 등 교육 계몽활동을 계획하는 한편,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주도하였다. 조선일보 사장, 조선물산장려회 이사회 고문 등을 지냈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출생-사망 1872.1.5 ~ 1942.4.27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충북 괴산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국장(1993)

괴산(槐山)에서 출생하였다. 1898년 (武官學校)에서 수학하였고, (李商在)·이승만(李承晩) 등이 창설한 (獨立協會)의 민족 에 참여하였다. 1919년 후 (金昌淑) 등이 프랑스 파리의 에 제출할 진정서를 전국 (儒林)들을 중심으로 작성 서명하자 평안도 지역을 맡아 서명활동을 하였으며, 이어 김창숙이 진정서를 가지고 상하이[上海]로 건너갈 때 동행인으로 박돈서(朴敦緖)를 소개해 주었다.

1920년 6월 민족교육운동 단체인 조선교육회(朝鮮敎育會)의 설립을 주도하고 개선, 지방 순회강연, 설치 등 교육 계몽활동을 계획하였다. 이어 12월에는 이승만·(金奎植) 등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태평양회의(太平洋會議)에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독립선언서에 조선교육회 대표로 서명하였다.

1922년 의 인가를 받아 조선교육회의 명칭을 조선교육협회(朝鮮敎育協會)로 변경하고 이사(理事)로 선임되어 전국 순회강연 및 한글강습회 개최 등을 통한 청년계몽과 인재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1923년 1월 서울에서 이종린(李鐘麟)·백관수(白寬洙) 등 20여 개 단체의 대표들이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 발기준비위원회를 구성할 때 그 준비위원으로 선임되었다. 또한 조선교육회의 민립대학설립운동을 주도하여 같은 해 4월 2일 개최된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유성준(兪星濬)·강인택(姜仁澤) 등과 함께 상무위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7년 12월 신간회(新幹會) 경성 지회장이 되었고, 1930년 11월에 열린 신간회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중앙검사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32년 4월 (朝鮮日報) 사장에 취임하였고, 이어 5월 조선물산장려회 이사회에서 고문으로 추대되는 등 활발한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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