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호준

박호준

[ 朴祜儁 ]

요약 대구사범학교 재학중 비밀결사단체 문예부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펼쳤다. 이후 조직을 확대해 다혁당 조직에 앞장서고, 경기부원의 일을 맡아 활동했다. 1941년 '대구사범학교사건'으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생-사망 1920.10.1 ~ 2007.1.30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경북 예천
주요수상 건국포장(1977), 건국훈장 애국장(1990)

1920년 10월 1일 예천(醴川)에서 태어났다. 대구사범학교에 재학 중이던 1940년 11월 30일 이 학교의 항일 학생 단체인 문예부(文藝部)에 가입해 문화 중흥과 항일의식 고취에 힘쓴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문예부에 가입한 뒤 회원들과 함께 매주 토요일에 작품 감상 및 비판회 등을 갖기로 결의하고 철저하게 비밀을 준수하며 이듬해 3월까지 9회에 걸쳐 모임을 가졌다.

상급생인 8회 회원들이 졸업한 뒤에는 권쾌복(權快福)·유흥수(柳興洙)·이주호(李柱鎬) 등 15명과 함께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고 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대구 대봉정(大鳳町)에 있는 유흥수와 이주호의 하숙집에서 기존의 문예부 및 연구회(硏究會)를 확대 개편해 비밀결사 단체인 다혁당을 조직하였다.

이후 대구 지역의 다른 학교 학생들은 물론 일반 사회인까지 포섭 대상으로 삼았는데, 조직 역시 당수·부당수 아래 총무·학술·문예·연구 등 각 부서를 두는 등 체계적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박호준은 경기부원의 일을 맡아 활약하면서 동지들과 함께 민족 차별교육 반대와 항일 의식 고취 등에 앞장섰다.

1941년 8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의 간행물인 《반딧불》이 의 손에 들어가면서 비밀결사 조직도 드러나 결국 관련자 전원이 되었는데, 이를 '대구사범학교사건'이라고 한다. 박호준도 이때 체포되어 2년간 미결수로 잔혹한 을 받다가 1943년 11월 에서 2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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