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제남
[ 高濟南 ]
- 요약
1907년 일제가 강제로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자 항일 의병투쟁에 투신했다. 의병장이 되어 정읍, 흥덕, 소노령 등에서 일본군과 싸워 전과를 쌓았다. 1909년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출생-사망 | 1887.3.1 ~ 1909 |
---|---|
본관 | 장흥 |
국적 | 한국 |
활동분야 | 한말 의병 |
출생지 | 전북 고창 |
주요수상 | 건국포장(1980), 건국훈장 애국장(1990) |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1887년( 24) 3월 1일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한말 장인 고석진(高石鎭)의 문인으로, 1907년 7월 일제가 강제로
(韓日新協約)을 체결하고 다음달 1일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자
이에 분개해 같은 해 의병운동에 투신하였다.
이후 의병장이 되어 김영백(金永伯)·이화일(李花一) 등과 2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長城郡) 일대에 창의포고문(倡義布告文)을 살포한 뒤 정읍(井邑)에서
일본군과 싸워 크게 승리하였다. 1908년에는 흥덕(興德)·소노령(小蘆嶺) 등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고, 일본군 소(兵站所)를 공격해 장총 3정, 군도 5개, 탄환
등을 노획하였다.
1909년에도 항일 의병투쟁을 계속하다가 (所聲面)에서 작전계획을
구상하던 중 일본 에게 체포되어 (北二面) 헌병분견소에서 총살당하였다.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 , ,
카테고리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