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권

김기권

[ 金基權 ]

요약 일제시대 광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6년 학생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여 민족적 교양 함양과 식민통치의 부당성 연구에 힘썼다. 이후에도 독서회중앙본부 등을 조직해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출생-사망 1910.9.11 ~ 2005.4.11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항일 학생운동)
출생지 광주(光州)
주요수상 건국포장(1982), 건국훈장 애국장(1990)

1910년 9월 11일 광주(光州:현 )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11월, 왕재일(王在一)·장재성(張載性)·최규창(崔圭昌)·김광용(金匡溶)·정우채(鄭瑀采)·국순엽(鞠淳葉)·임주홍(林周弘) 등 15명과 함께 항일 학생 성진회(醒進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조국의 독립, 연구, 노예교육 반대 등을 으로 삼아 민족적 함양과 식민통치의 부당성 연구, 조직 확대 등에 힘썼다. 그러다 1927년 3월 회원 가운데 이반자가 생김에 따라 성진회를 해체하였으나, 주동 학생들의 활동은 계속되었다.

1928년 6월 동료 학생인 이경채(李景采)가 퇴학을 당하자 임주홍·최규창 등 2~4학년생들과 함께 복교운동을 펼치면서 동맹휴교를 결의 지도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하였다. 같은 해 7월에는 동지들과 맹휴대책중앙본부를 설치하고 을 작성해 학부형과 학우들에게 발송하다가 에 되어 6월의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6월 광주 시내 각 학교 학생 지도자들과 함께 비밀결사 중앙본부를 조직하고, 마련을 위한 을 설치할 때 운영자금으로 500원을 출자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같은 해 11월 3일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성진회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0년 10월 광주에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해 1931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1년의 징역형이 확정됨으로써 거듭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동지회 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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