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 李鉉 ]
- 요약
1919년 3월 4일 대동군 금제면 원장리의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수천 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사천지역까지 행진하여 체포된 사람들을 구조하고자 했다. 잠복해 있던 일본 경찰과 맞섰으나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출생-사망 | 1882 ~ 19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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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한국 |
활동분야 | 독립운동 |
출생지 | 평남 강서 |
주요수상 | 건국훈장 독립장(1990) |
강서(江西)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전국적으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반석면(班石面)에 있는 반석(盤石敎會)의 신도였던 그는 3월 4일
금제면(金祭面) 원장리(院場里)에서 거행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원장장터로
행진하던 시위군중은 이틀 전인 3월 2일 시위 준비를 하다가 된 사천교회
간부를 구출하기로 결의하고 사천(沙川)으로 향하였다.
수천 명으로 늘어난 시위군중이 사천시장에 이르렀을 때 미리 잠복해 있던 일본
의 발포로 현경묵(玄景默) 등 시위군중 18명이 현장에서 숨지자 분노한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맞서 헌병주재소장 사토[佐藤]와 보조원 3명을 타살하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8월 13일 평양지방법원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25년 순국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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