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건

이종건

[ 李鍾乾 ]

요약 중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만주로 건너간 후 한족회와 대한통의부에 소속되어 항일 투쟁을 계속했다. 1925년에 독립단체가 통합되어 조직된 정의부에서 요직을 맡아 활동했고, 조선혁명당 간부로도 활약했다.
출생-사망 1887.10.17 ~ 1958.5.20
동산
별칭 종순, 병천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경남 통영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0)

호는 동산(東山), 이명(異名)은 종순(鍾淳)·병천(柄天)이다. 통영(統營)에서 출생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침탈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新興武官學校)를 졸업하였다. 1919년 만주에서 조직된 (韓族會)에 가담하여 동포들의 생활안정과 독립운동을 위해 힘썼으며, 1922년 8월 독립군 연합단체인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결성에 참여, 1924년까지 산업위원·실업위원장·군무국장·선전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1924년 7월 [吉林]에서 재만독립운동단체의 재통일을 위하여 개최된 통일회의주비회(統一會議籌備會)에 (金東三)과 함께 대한통의부 대표로 참여하였고, 1925년 1월 (匡正團)·고본계(固本契)·학우회(學友會)·독립군단(獨立軍團) 등 10여 개의 독립단체를 통합하여 정의부(正義府)가 조직되자 중앙집행위원·선전위원장·산업위원장 등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7년 전민족유일당(全民族唯一黨)을 조직하기 위해 열린 대표자회의가 협의회(協議會)와 촉성회(促成會)로 나누어지자 촉성회파에 속하여 (池靑天)·(金元植)·(金尙德)·김동삼 등과 함께 정의부를 탈퇴하고 민족유일당촉진회(民族唯一黨促進會)를 조직하였다. 1930년 8월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 보안부위원장이 되었으며, 1932년 1월 신빈현(新賓縣) 하북(河北)에서 조선혁명당 간부회의에 참석하던 중 이를 탐지한 일본 영사관원의 습격으로 (李浩源)·김관웅(金寬雄)·이규성(李奎星) 등 10여 명의 간부와 함께 체포되어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8·15광복 후인 1946년 과도정부 수립을 위한 비상국민회의에서 국방위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으며, 민주주의독립전선의 부위원장으로서 좌우합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1990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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