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순

이명순

[ 李明淳 ]

요약 만주로 이주하여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1919년에는 대한국민회를 조직하였고, 훈춘의 3월 20일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이후 북간도국민회 조직과 대한독립군 창설에도 가담했다. 일본과의 교전 중 전사했다.
출생-사망 1872.7.7 ~ 1920.12
별칭 일명 명순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함북 명천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86)

일명은 명순(明順)이다. 명천(明天)에서 출생하였다. 국권피탈 후인 1912년 만주 [吉林省] 현[琿春縣] 진안촌(鎭安村)으로 이주하여 야소학교(耶蘇學校)에서 교민자녀의 교육에 힘썼다. 1919년 3월 11일 훈춘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를 조직하고 회장에 선출되었으며, 3월 20일 훈춘 동문(東門)과 서문(西門) 사이의 도로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여 관내 1만 5000여 명의 교민이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한편 북간도 교민사회의 자치와 독립운동을 벌여온 간민회(懇民會)와 통합하여 북간도국민회(北間島國民會)를 조직하고, (具春先) 등과 함께 8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하는 등 북간도국민회를 대규모 조직으로 발전시켰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항일 독립군부대인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을 창설하고, 북간도 일대의 각 독립단체 대표들과 훈춘 사도구(四道溝)에서 회합하여 결사대를 조직, 무력투쟁을 결의하였으며, 이듬해 5월에는 (崔振東) 등이 인솔하는 군무도독부군(軍務都督府軍)과 제휴하여 무력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20년 10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동만주 총판부(總辦部) 조직에 참여하여 참사(參事)로 활동하였고, 후인 12월에는 북간도국민회 대표로서 만주의 여러 독립군 부대가 통합된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을 조직하였다. 국민회군 사령관으로 휘하에 700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일본군과 수많은 전투를 치르다가 전사하였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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