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렬

여행렬

[ 呂行烈 ]

요약 일제강점기 만주와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항일구국단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고, 결사의용단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금해 임시정부를 지원했다. 1920년 평양부청에 폭탄을 투척한 후 체포되었다.
출생-사망 1892.10.17 ~ 1973.8.30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평남 중화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3)

평안남도 중화(中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인 순근(淳根)이다. 1909년 서울 영어학교를 졸업하였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주로 건너가 아버지 여순근과 (金承萬)을 만나 [上海]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락방법 및 국내활동 방안을 상의하고 귀국하였다. 그후 다시 상하이를 다녀와서 홍석운(洪錫雲)·이기영(李基寧)·한준관(韓俊觀) 등과 함께 항일구국단(抗日救國團)을 조직, 총무로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만주에서 돌아온 (表永俊)·주석환(朱錫煥) 등을 통해 과 을 반입하였으며, 1920년 3월 미국인이 경영하는 평양 기홀병원(紀笏病院)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특파된 (金錫璜)과 협의하여 표영준·홍석운 등과 함께 결사의용단(決死義勇團)을 조직, 각처에 지부를 설치하고 군자금을 모금하여 임시정부에 보냈다.

같은 해 5월 기홀병원에서 의용단 간부회의를 열고 무력행동을 결의, 광복군사령부의 국내 특파원 (張德震)·(朴泰烈) 등과 함께 평안남도 도청과 평양부청·평양경찰서 등을 폭파할 계획을 세웠다. 8월 3일 표영준과 함께 평양부청에 폭탄을 던지고 칠성문(七星門) 밖으로 피신하다 검문 중이던 일본경찰 요코야마[橫山驅次]를 쏘아 부상을 입혔다. 8월 20일 다시 표영준과 함께 (浮碧樓) 앞을 지나는 평남경찰부장의 자동차를 권총으로 사격, 운전기사를 부상케 하였다.

일본경찰의 추격으로 1920년 9월 체포되어 평양복심법원에서 8년형을 선고받고 1927년 8월 출옥하였다. 출옥 후 만주로 건너가 아버지와 이청천(李靑天)·허영백(許英伯) 등을 만나고 상하이로 가던 중, 중국관헌에게 체포되어 다시 국내로 압송된 후 거주제한조치를 당하였다. 1945년 2월 평양신사(平壤神祠) 방화와 군사시설 파괴 등의 계획을 추진하다가 체포되기도 하였으며, 광복 후 임시정부가 환국하자 (金九)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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