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춘생

안춘생

[ 安椿生 ]

요약 만주로 망명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군에 배속되어 임시정부를 지원하며 항일운동을 시작했다. 1940년부터는 광복군에 소속되어 사병훈련과 정보수집 등을 담당했다. 광복군 주난징대장을 지냈다.
출생-사망 1912.8.12 ~ 2011.1.26
본관 순흥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황해 벽성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3), 국민훈장 동백장(1976), 국민훈장 무궁화장(1987)

본관은 순흥(順興)이다. 벽성(碧城)에서 출생하였다. 안중근(安重根)의 종질(從姪)이다. 1909년 안중근의 [哈爾濱] 의거로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17년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黑龍江省]에서 해륜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제의 만주침략이 본격화 되자 [南京]으로 건너가 중앙육군군관학교(中央陸軍軍官學校)에서 군사학을 수학하였다. 1936년 졸업과 함께 중국군 제2사단에 배속되어 대일전에 참전, 일본해군육전대 사령부를 공격하고 인상항(引翔巷)의 보산지창(寶山紙廠)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1938년 중국군 육군대위로 [湖南省] 경비사령부에 복무 중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上海]에서 거사할 폭탄을 홍콩[香港]까지 운반하였다. 1939년 10월 중국군 육군소령으로 군정부 감호대대(軍政府監護大隊)에서 복무하다가 1940년 10월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에 편입, (盧泰俊)·노복선(盧福善)·조인제(趙仁濟) 등과 함께 [山西省] 다퉁[大同]으로 파견되었다. 1941년 광복군 제1지대 간부로 배속되어 산시성 등지의 사병을 모아 훈련시키는 한편, 정보수집·적정정탐 등의 임무를 수행하며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1942년 4월 광복군 제2지대 제1구대장에 임명되었고, 1945년 8·15광복 후에는 광복군 주난징지대장[駐南京支隊長]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였다. 민족청년단 훈련부장으로 청년운동에 헌신하다 1949년 를 제8기로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교장, 육군 제8사단 사단장, 차관보 등을 역임한 뒤 1961년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제5대 광복회장, 평화통일정책자문위 위원, 건립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1976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2011년 1월 26일 별세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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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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