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김상덕

[ 金尙德 ]

요약 일본과 중국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일본에서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해 활동하다가 상하이로 망명했다. 재만농민동맹 활동도 하고, 조선민족혁명당 위원과 임시정부 선전위원으로도 활약했다.
출생-사망 1891.12.10 ~ (납북)
별칭 일명 영주, 상철, 재두
활동분야 독립운동, 정치
출생지 경북 고령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90)

이명(異名)은 영주(令州), 상철(相徹), 재두(在斗)이다. 1891년 고령(高靈)에서 출생하였다. 1917년 3월 서울 (儆新學校)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東京]에 유학하였다. 1919년 1월 재일 유학생 김도연(金度演)·백관수(白寬洙)·(崔八鏞) 등과 함께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을 결성하고 독립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 2월 8일 도쿄 기독교청년회관에서 2·8독립선언식을 거행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수개월 동안 복역하였다.

그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하여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동방혁명대표자대회(東方革命代表者大會)에 참가하였고, 1923년 2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改造派)의 선언서 수정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반석현(磐石縣)에서 조직된 재만농민동맹(在滿農民同盟)의 중앙집행위원 책임비서로 선임되어 기관지인 《농보(農報)》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32년 한국독립군 참모, 1935년 7월 재건파(再建派)가 창당한 조선민족혁명당(朝鮮民族革命黨)의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고, 1942년에는 조선민족혁명당의 임시정부 참여로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임되었다. 또 1943년 4월에는 임시정부에서 구성한 선전위원회 위원이 되어 '조선민족혁명당창립경과급기약사(朝鮮民族革命黨創立經過及其略史)'를 쓰기도 하였으며, 1944년 4월부터는 임시정부 학무부 차장과 문화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 11월 제1차 임시정부 귀국단으로 귀국, (非常國民會議)의 대의원과 독립촉성국민회(獨立促成國民會)·(民族統一總本部)의 총무부장을 지냈고, 1948년 5월 민족통일총본부 소속으로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나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1990년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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