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점

김시점

[ 金時漸 ]

요약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신민회 회원으로서 '105인 사건' 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안둥현의 임시의사회와 대한청년연합회를 조직하고 연통제의 산하 평북독판부 내무사를 역임하는 등 계속해서 항일 운동에 전념하였다.
출생-사망 1882 ~ ?
국적 한국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생지 평북 정주
주요수상 건국훈장 애족장(1990)

1882년( 19) 정주(定州)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항일 구국운동에 투신하였다. 1910년 평안북도 선천(宣川)에서 (安明根)이 초대 조선 인 [寺內正毅]를 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을 구실로 이듬해 일제는 신민회(新民會) 회원 600여 명을 하고, 이 가운데 105인을 기소하였는데, 이 사건이 바로 105인사건이다.

김시점도 신민회 회원으로서 이때 체포되어 18개월 동안 모진 을 당하다가 1913년 3월 무죄 을 받고 풀려났다. 이어 만주(滿洲)로 망명해 1919년 안둥현[安東縣]에서 김두만(金斗萬)·(金承萬)·박춘근(朴春根)·(吳學洙)·이영식(李英植) 등과 안동현임시의사회(安東縣臨時議事會)를 조직하고 총대(總代)로 활약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김승만·(吳東振) 등과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를 조직하고 재무부장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의 국내 비밀 연락기구인 (聯通制) 산하 평북독판부 내무사를 역임하였다. 1921년 4월에 열린 대한청년단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역시 재무부장으로 선출되어 계속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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