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건로

대건로

[ 大建路 ]

요약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 191번지(한강대교 북단)에서 마포구 합정동 352-2번지(양화대교 북단)에 이르는 가로(街路).

길이 6㎞, 너비 35m, 편도 4차선이다. 북단에서 ·마포대교·서강대교 북단을 지나 북단에 이른다. 자동차 전용도로로서 1968년 한강개발계획에 따라 강변 제방도로를 건설하면서 만들어졌다. 공사계획 순서별로 강남과 강북으로 구분하고, 이를 다시 9개의 도로 건설구간으로 나눔에 따라 용산구 원효로4가에서 서쪽으로 제2한강교(지금의 양화대교) 북단에 이르는 길이 5.94㎞의 강변3로가 되었다.

1972년 한강 북쪽은 강변로, 남쪽은 강남로로 하고 다시 상류에서 하류쪽으로 각각 1로·2로·3로·4로·5로로 세분함에 따라 강변3로는 제1한강교(한강대교) 북단에서 제2한강교 북단에 이르는 길이 6㎞, 너비 20m의 강변4로가 되었다. 그 뒤 1984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을 기념하여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金大建)의 이름을 따서 도로명을 지었다. 김대건은 1925년 교황청에서 시복되어 복자위(福者位)에 오르고 1984년 다시 시성되어 성인위(聖人位)에 올랐다.

1988년 9월 8일 강변대로로 통합하는 의견이 상정되었나 기존 도로명으로 존치하기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편도 4차선의 교량으로 이루어진 가 완공됨으로써 편도 4차선으로 운행된다. 주요 통과지역은 용산구 이촌동·원효로동·청암동, 마포구 마포동·토정동·현석동·용강동·신정동·하중동·상수동·당인동·합정동이다. 한강로·용호로·원효로·마포로·토정길·창전로·신촌로·양화로와 연결된다.

이 도로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지금의 한강대교에는 노량진, 원효대교에는 용산진, 마포대교에는 마포진, 서강대교에는 서강진, 양화대교에는 양화진 등 나루터가 많았다. 그에 따라 상업이 활발하였으며 부자들과 세력가들의 별장·정자가 많았다. 용산과 마포의 경계를 이룬 강변 산비탈에는 1673년(현종 14) 의 별영이 세워졌고, 그 서쪽에는 조선 세조 때 (申叔周)의 별장인 담담정이 있어 이곳에서 당대의 문장가인 강희맹(姜希孟) 등과 교유하였다. 신정동에는 서강나루로 들어오는 선박에 세금을 부과하던 공세청(점검청)이 있었고, 사도세자의 사당도 있었으나 도로 확장 때 파손되어 없어졌다.

현석동에는 숙종 때의 문신인 박세계(朴世界)의 별장인 소동루와 영파정이 있었다. 소동루는 백운각이라는 요정으로 바뀌었고 영파정은 퇴락한 채 안방 건물만 남아 있다. 사북창이라는 정부의 곡식보관창고도 있었다. 당인동에는 1924년 설립된 서울화력발전소 및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있다.

당산철교가 지나가는 곳에는 절두산순교기념관이 있고, 그 앞에는 강변북로와 대건로를 이어주는 잠두봉지하차도가 1999년 7월 30일 개통되어 절두산성지의 진출입 여건이 크게 개선되었다. 그 맞은편 합정동 114번지에는 대한매일신보를 설립한 영국인 배설(裵說, 베셀:Ernest Bethell)을 비롯하여 언더우드(Underwood) 일가,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Homer Hulbert) 등이 안장되어 있는 서울외인묘지가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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