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영향

공자의 영향

공자는 많은 제자들을 교육하여 의 실현을 가르치는 한편, 자기자신도 그 수양에 힘써,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고 술회할 정도의 인격에 도달했기 때문에, 생전에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후에는 제자들이 각지에서 그 가르침을 전파하였으나, (諸子百家)가 일어남으로써 교세가 약해졌다. 이를 다시 일으킨 사람이 (孟子)였으며, 또 전국(戰國) 말기에 (荀子)가 이파(異派)의 사상도 받아들여 집대성하였다.

그후 한(漢)나라의 (武帝)가 유교를 (國敎)로 택함에 이르러 공자의 지위는 부동의 것이 되었으며, 사실은 각 시대의 유교 내용에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공자 자체는 이 가르침의 (鼻祖)로서 조(淸朝) 말까지 계속 존경을 받았다. 한국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민국혁명(1912) 후 [吳虞]와 [魯迅]은 공자를 중국의 봉건적 누습(陋習)의 근원이라고 공격하였다. 이 논법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이후에도 계승되어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1973)에서 절정에 이르고 실각 후 진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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