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구

제정구

[ 諸廷丘 ]

요약 빈민 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경기도 시흥시에 복음자리 마을을 세웠으며 빈민촌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였다. 1986년 정일우 신부와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저서로는 《가짐 없는 큰 자유》등이 있다.
출생-사망 1944.3.1 ~ 1999.2.9
국적 한국
활동분야 사회운동·정치
출생지 경남 고성
주요수상 막사이사이상(1986), 국민훈장 모란장(1999)
주요저서 《신부와 벽돌공》(1997)

경상남도 대가면 유흥리에서 태어나 대흥초등학교와 중학교,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66년 정치학과에 입학한 뒤 에 뛰어들어 이듬해 제적되었고, 1973년에 복학했다가 1974년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위반으로 투옥되었다. 1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으로 출소하였으며, 1980년에야 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에 비로소 ·되었다.

1972년 청계천 판자촌에서 교사로 소외계층을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되어 빈민운동에 투신하였다. 1975년 뚝방동네로 이주하여 빈민들과 생활하다가 1977년 강제철거가 시작되자 정일우 신부와 함께 철거민들을 이끌고 지금의 경기도 에 복음자리 마을을 세웠다. 1980년 도시빈민 사목협의회를 결성하여 계속되는 빈민촌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였으며, 철거민들의 집단이주를 주도하여 한독마을, 목화마을 등 도시 빈민의 정착지를 마련하는 데 헌신하였다.

말기에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로서 1987년 6월항쟁을 주도하였고, 1988년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하여 공동대표를 맡아 제도권 정치에 발을 디뎠다. 이 해에 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종로구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92년에는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시흥·군포 지역에서 출마하여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이 된 그는 민주개혁정치모임의 상임 운영위원을 맡아 깨끗한 정치를 위한 자정(自淨)선언을 주도하였으며, 1995년 야권이 분열하여 통합민주당에서 가 분당할 때 소신을 지켜 합류하지 않았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재선된 뒤 민주당 를 지냈으며, 국민통합추진회의를 결성하여 사무총장을 맡았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한나라당으로 합당할 때 합류하였다. 1998년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 서면 질의서를 제출하는 등 선량으로서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다가 이듬해 55세의 나이로 작고하였다.

도시 빈민의 벗, 철거민의 대부로 불릴 만큼 빈민운동에 헌신한 공로는 해외에서 더욱 잘 알려져 1986년에 정일우 신부와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공동 수상하였으며, 1999년 사망 직후에 모란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자서전인 《신부와 벽돌공》을 1997년에 출간하였으며, 2000년 1주기에 맞추어 ‘제정구를 생각하는 모임’에서 이 책을 중심으로 유고를 모아 《가짐 없는 큰 자유》를 펴냈다.

참조항목

, , ,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