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동

오치동

[ Ochi-dong , 梧峙洞 ]

요약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
위치 광주 북구
면적(㎢) 2.93㎢
인구(명) 2만 9191명(2008)

면적 2.93㎢, 인구 2만 9191명(2008)이다. 북구에 속한다. 동쪽은 문흥동과 접하고, 서쪽은 매곡동, 남쪽은 용봉동, 북쪽은 서산동과 접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촌리·하촌리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오치리라고 하였다. 1935년 서방면에 편입되었고, 1955년 광주시 서방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61년에는 석곡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서산동 관할이 되었고, 1986년 광주시가 광주직할시로 승격됨에 따라 광주직할시 북구 서산동이 되었다. 1994년에 서산동(매곡동·삼각동·일곡동·오치동) 관할에서 오치동으로 분동되었으며, 1997년 오치동이 오치1·2동으로 분동되어 지금에 이른다.

법정동인 이 동은 인 오치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구재 밑에 자리한 오치를 중심으로 동쪽에 웃마을, 서쪽에 황계머리마을, 남동쪽에 매머리마을, 남서쪽에 아랫마을, 북쪽에 신촌마을 등 자연마을이 모여 있다. 물방골과 참새골 사이에 를 타는 옥녀 모습의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 인 '거문고등'이 있는데, 이곳은 《》에도 '고읍(古邑)' 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향토사단 뒤편에는 '큰 안골'과 '역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1990년 이후 택지조성사업으로 도시 형태를 갖춘 도·농복합지역으로, 포도재배 단지에서 유명한 오치포도가 생산된다. 광주종합사회복지관·오치종합사회복지관 등 문화·복지 시설과 오치한전·····서산초등학교 등이 있다.

민속문화로 조선 고종 때 이 지역의 거유(巨儒)인 남강(南岡) 이재정(李載丁) 의 문생(門生) 70여 명이 1898년에 창계한 강의계(講誼契)가 있다. 이는 스승 사후에 제자들이 스승의 높은 학덕을 추모하고 서로 도와 학문에 힘쓰기 위하여 조직한 동학계의 일종으로, 70여 년간 지속되다가 1968년 설립 계원 김형주 계장의 사거로 소멸되었다.

문화유적으로 노씨재각(盧氏齋閣)과 오산정·읍취정이 있다. 노씨재각은 광주노씨 재각으로 1926년에 능안골 고려평장사(高麗平章事) 만(蔓)의 묘역 좌상에 설단하여 삼릉단(三陵壇)이라 칭하였으며, 광주자연과학고등학교에서 삼각산 방향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오산정은 노사(盧沙) (奇正鎭)의 문인인 오산(梧山) 이용헌(李勇憲)의 아들 송천(松泉) 이계익(李啓翼)이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지은 정자로 1911년 오치의 안산(案山)에 세워졌는데, 지금은 오치우체국 근처 이재열의 집에 있다.

읍취정은 오치동 이재현(李載現)의 소유로, 오치2동 동사무소 뒤편에 있다. 함평이씨 읍취 이방필(李邦弼)의 후손이 세웠으며, 1691년 중창(重創)을 거쳐 1980년에 보수하였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골기와 건물로 방이 없고 대신 으로 되어 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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