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화

종교화

[ 宗敎畵 ]

요약 예배·전례·수신(修身)·포교·찬미 등의 종교 활동을 목적으로 제작된 그림.

종교의 형식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다르나 주로 신 또는 신적 인격의 형상화가 주된 소재가 된다. 특히 종교가 인간 생활을 강하게 지배하던 고대에서 중세의 회화의 걸작 가운데는 소재가 종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와 에서는 각각 와 의 언행을 담은 성전(聖典)이 중시되어 많은 작품을 남겼다. 와 에서는 유일 절대신의 도상 표현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으므로 회화 대신 나 시나고그 등 건축물이 중심이 되어 발달하였다.

그리스도교의 회화는 비잔틴제국 때의 도상(icon)과 에서 비롯되었으며 이어 성당의 , 제단화 등에서 훌륭한 작품이 그려졌다. 특히 시대에는 많은 종교화의 걸작이 쏟아져 나왔는데 프라안젤리코, 보티첼리, 라파엘로, , 미켈란젤로 등의 대가들이 이 시기에 활약하였다. 북유럽 르네상스에는 에이크 형제와 뒤러 등이 정밀한 종교화를 그렸고 니스파 화가 틴토레토, 에스파냐의 화가 그레코 등도 훌륭한 작품을 남겼다. 이후로도 성서의 여러 장면은 유럽 화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소재였다.

불교의 회화는 주로 건물의 내벽(內壁)과 외벽(外壁)에 벽화의 양식으로 그려진다. 서양에 많은 걸작품이 남아 있는 것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이며 대신 불상·탑·석등·부도 등 조각품이 풍부하다.

한국의 종교화는 거의 불화라고 할 수 있는데, 4세기 말 무렵 대륙에서 받아들인 불교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건축·조각 양식과 더불어 한국 고대미술 발달에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신라의 화가 (率居)가 황룡사(皇龍寺) 벽에 노송(老松)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삼국시대 초에 사찰건물에 벽화 양식의 불화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사찰은 대부분 목조라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으며 유교를 숭배하고 불교를 억누르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사찰문화가 급격히 퇴조되었다. 그러나 불화가 결정적으로 수난을 당한 것은 때이며, 이때 전국의 주요 사찰이 모두 불탔거나 파괴되었다.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의 벽화로는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 벽화가 있으며, 이밖에 (魯英)의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작가 미상의 《나한도(羅漢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조선시대의 작품으로는 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용주사(龍珠寺)의 불정(佛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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