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성곽

개성성곽

[ 開城城郭 ]

요약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의 도성.
소재지 황해북도 개성시
시대 고려
규모 왕성·내성·외성

왕성·내성(반월성)·외성(나성)이 있으며 을 배경으로 개성 시가지를 에워싸고 있다. 개성은 본래 고구려 땅으로서 부소갑·동비홀 등으로 불렸는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수도를 송악산 남쪽에 정하고 이름을 개주로 고쳤다. 그 후 개성은 고려 때는 경도·경성·황도·송도·중경·개경 등의 이름으로 불렸으며 개성이라는 명칭은 995년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개성에는 여러 시기에 걸쳐 쌓은 성들이 있다. 그 중 가장 먼저 쌓은 것이 발어참성이다. 보리참성·밀떡성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의 하나인 국이 896년에 송악산 기슭에 쌓은 것이다. 태봉국의 궁성이었으며 오늘날 만월대라고 부르는 고려 왕궁의 중심부를 둘러싼 토성이었다.

발어참성은 918년 고려 왕조가 개국한 후에도 그대로 고려의 도성이 되었다. 고려는 건국 초기에 수도 개성에 왕성만을 쌓았는데, 왕성은 중앙관청들이 자리잡고 있는 부분을 둘러싼 황성과 왕이 거처하는 궁전을 둘러싼 궁성으로 나뉜다.

황성은 발어참성의 성벽을 거의 그대로 이용하였다. 성벽은 광화교 부근에서 북으로 뻗다가 다시 서쪽으로 굽어져 만월대 북쪽 언덕을 지나 나성벽에 이르고, 남쪽에서는 광화교에서 남쪽 언덕을 따라 주작고개를 지나 나성과 합쳐져 황성의 남벽을 이룬다. 황성의 문은 정문인 동쪽의 광화문을 비롯하여 남쪽의 주작문, 서쪽의 영추문(지금의 눌리문), 북쪽의 장평문 등 모두 20개 있었다. 광화문을 지나 서쪽으로 가면 궁성의 정문인 승평문에 이르고 여기에서 북으로 큰 마당을 지나면 만월대 앞의 신봉문(의봉문)에 다다른다. 신봉문을 지나면 높은 축대가 나타나는데 이 축대 위에 궁성의 기본 건물들이 있었다. 궁성의 성벽은 북벽·동벽·서벽의 일부만 남아 있고 남벽은 거의 없어졌다. 궁성 안에는 수십 개의 궁정과 문, 정자와 못 등이 있었으나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에 타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축대와 초석만이 남아 있다.

외성(나성)은 거란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1029년에 쌓았다. 성은 송악산 남서 기슭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뻗다가 용수산(룡수산)으로 이어지는데, 자연포곡식 토성으로 길이 16㎞이다. 외성에는 큰 문 8개와 중간 크기의 문 4개, 작은 문이 13개 있었다. 1350년에 보수되었다.

내성은 고려 말에 외적에 대한 방어를 강화할 목적으로 1391년부터 발어참성 동남쪽 나성 안에 쌓기 시작하여 1393년(조선 2)에 완공하였다. 내성의 성벽은 나성 서쪽벽 눌리문 부근에서 시작하여 남대문을 지나 동쪽으로 가다가 자남산에 이른 뒤 다시 북쪽으로 이어져 성균관 뒤 언덕에서 나성 북쪽 성벽에 다다른다. 내성의 총길이는 8.5㎞이다. 내성은 평면이 반달모양이라 하여 반월성이라고도 하였다. 내성에는 남대문을 비롯하여 동대문·동소문·서소문·북소문·진언문 등 7개의 성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1954년에 옛모습대로 복구된 남대문만이 남아 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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