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양사
[ 葛陽寺 ]
- 요약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에 있던 사찰.
용주사
창건시기 | 85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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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건자 | 염거 |
소재지 | 경기 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
현재의 주사(龍珠寺) 자리에 있던 사찰이다. 854년(신라 16)에
염거(廉巨)가 창건하였으나 952년(고려 3) 불에 타 없어졌다. 970년 당시
국사(國師)이던 혜거(惠居)가 와 본 뒤, ‘물이 맑고 산이 아름다워 만대에 복된
터가 될 것’이라고 왕실에 절의 중건을 요청하고 이듬해인 971년(광종 22)
갈양사를 중건한 뒤, 승방 혜거헌(惠居軒)을 차리고 머물렀다. 광종은 금과 함께 조
500석, 면포 60필, 전결 500석을 내렸다고 한다. 혜거는 974년에 76세로 이곳에서
입적하였고, 994년(성종 13)에 (崔亮)이 비문을 지어 혜거국사비를 세웠다.
이후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를 여는 등 수륙도량으로 이름났다.
그후 조선 중기까지는 연혁이 전하지 않는다. 1790년(조선 14) 조정에서 이
절의 터를 사도세자(思悼世子), 곧 장헌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딸린
능사(陵寺)로 삼기로 하였다. 현륭원은 현재의 융릉(隆陵)이다. 이에 보경(寶鏡)
사일(獅馹)이 철학(哲學) 등과 함께 8만 냥의 시주를 거두어 현재의 용주사를
세웠다. 절을 지을 때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어 사찰 이름을
용주사라 했다고 한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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