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적

섭적

[ 葉適 ]

요약 중국 남송 시대 사공학파 가운데 한 사람. 국가 정책, 국방, 민생 등 사회 정치적 문제를 관심사로 삼았다. 경세적인 입장에서 경서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으며 특히 재정술인 '이재(理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같은 관점은 주자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출생-사망 1150 ~ 1223
충정(忠定)
별칭 수심선생(水心先生), 정칙(正則)
출생지 온주 영가
주요저서 《수심문집》

수심선생(水心先生)이라고도 부른다. 1150년 온주(溫州) 영가(永嘉)에서 태어났다. 자(字)는 정칙(正則)이며, 시호는 충정(忠定)이다. (孝宗:재위 1162∼1188) 때인 1178년에 진사가 되어 태학정(太學正), 태학박사 등을 지냈다. 나라의 침략에 대해 적극 싸울 것을 주장하였으며, 강회(江淮)에 둔전(屯田)을 실시하기도 했다.

섭적은 심성의 수양보다는 국가정책, 국방, 재정, 민생의 안정 등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된 관심사로 삼는 사공파(事功派) 또는 공리파(功利派)의 한 사람이었다. 사공파 가운데서도 (禮學)을 존중했던 영가학파였던 그는 학파의 사상과 다른 입장에 있었다.

그는 《(太極圖說)》을 '불분명하고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고, 와 의 역학(易學) 이해를 도(道)·불(佛)의 영향이라고 혹평하였다. 그에게는 진량(陳亮:1143∼1194)처럼 고학(古學)의 발굴이라는 의식보다는 어떻게 하면 국가의 제도, 정책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순전히 경세적(經世的) 입장에서 경서를 해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특히, 그는 재정술인 '이재(理財)'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이는 정당한 국가행위이며 단순한 조세의 증가를 목적으로 하는 '취렴(聚斂)'과는 다른 것임을 천명하였다.

그의 이같은 사상활동은 예학을 통해 주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유교의 주요 특성 중 하나인 경세의 의의와 관련하여 주자에게 커다란 과제를 던져 주었다. 저서에 《수심문집(水心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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