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파

사공파

[ 事功派 ]

요약 중국 송대에 국가정책, 국방, 재정, 민생의 안정 등 사회·정치적 문제를 주요 관심사로 삼았던 학파.

송학(宋學)의 흐름 속에는 심성을 중시한 내면적·적 경향을 대표하는 주자학(朱子學), 육학(陸學) 등과는 이질적인 경세(經世)와 사공(事功)을 중시하는 일부가 북송대부터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세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심성의 수양보다는 국가정책, 국방, 재정, 민생의 안정 등 사회·적 문제를 주요 관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 중에서도 진량(陳亮), 설계선(薛季宣), 진부량(陳傅良), 섭적(葉適) 등 남송대 사공파는 주자의 정치·경제관과 입장을 달리했다.

남송대의 사공파는 북송대의 왕안석(王安石)이 주자학의 선구인 등과 격심한 대립을 보인 것과는 달리, 표면적으로는 이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취하였으며, 정계에서도 주자를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장식, 여조겸(呂祖謙) 등 절충적 인물이 죽은 뒤, 학계의 추세가 강서(江西)에서 육학의 영향력을 제외하면 사공파에 의해 석권되어 갔다. 이에 따라 주자의 사공파에 대한 비판은 강렬했으며, 사공파의 주자에 대한 비판도 강해졌다.

사공파 중에서도 영강학파(永康學派)의 대표였던 진량은 주자를 사숙하는 등 주자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특히 그의 정치·관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철학적 기초를 주자의 과 대립하는 도기일원적 논리 위에 수립하였다. 진량은 도(道)를 주자가 말하는 적 원리·이상이 아니라, 각 시대 위정자들에 의한 국력의 충실, 민생안정 등의 정치적 성과로 보았다. 그는 이것을 사공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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