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왕설화

유리왕설화

[ 琉璃王說話 ]

요약 고구려 제2대 왕인 유리왕의 친자확인 설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3 〈고구려 본기(高句麗本紀)〉에 수록되어 전한다. (李奎報)의 시문집 《(東國李相國集)》 제3권 〈〉에도 실려 있다. 적 성격의 설화로서, 고구려 동명왕(東明王)의 아들 유리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린 시절을 아버지 없이 지내다가 필연적인 시련 과정을 거친 뒤 부자상봉을 이루고 왕위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설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구려 제2대 왕인 유리왕은 고구려 시조 주몽(朱蒙:동명왕)의 맏아들로서 어머니는 예씨(禮氏)이다. 주몽은 부여에 있을 때 예씨에게 장가들었고, 예씨는 주몽이 부여를 떠난 후 아들 유리를 낳았다. 유리는 어릴 때부터 새총을 잘 쏘았는데, 거리에 나와 놀면서 참새를 맞추려다가 그만 물긷는 여인의 물동이를 맞혔다. 여인은 아비 없이 자랐기 때문에 이와 같이 무례한 짓을 한다며 유리를 나무랐다. 유리는 부끄러워하면서 집에 돌아와 어머니 예씨에게 아버지는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가를 물었다. 예씨는 주몽이 부여를 떠나 (卒本)에 나라를 세운 경위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부여로 떠나기 전에 "만일 부인이 사내아이를 낳거든 내가 지녔던 유물을 일곱 모가 난 돌 위 소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으니, 그것을 찾아 내게로 오게 하시오. 그러면 그를 내 아들로 맞겠소."라는 말을 남겼다고 일러 주었다. 유리는 이 말을 듣고 곧 산골짜기를 헤매다니며 유물을 찾았으나 끝내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집에 있던 유리가 기둥과 사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듯해서 가보니 주춧돌이 일곱 모로 깎여 있었고, 그 돌 위에 세워진 기둥은 다름아닌 소나무기둥이었다. 유리는 곧 기둥 밑의 흙을 파고 끊어진 칼 도막을 하나 찾았다. 유리는 그것을 가지고 옥지(屋智)·구추(句鄒)·도조(都祖) 등 3인과 함께 졸본으로 가서 동명왕을 만났다. 유리가 끊어진 칼을 바치자, 왕은 가지고 있던 자신의 반도막 칼과 맞추어보았다. 비로소 한 자루의 칼이 이루어지자 왕은 크게 기뻐하며 유리를 태자(太子)로 삼았다. 이후 9월에 동명왕이 하늘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았다. 태자 유리는 부왕이 남긴 옥채찍을 부왕 대신 용산에 장사지내고 왕위를 계승했다. 이 때가 BC 19년이다.

이 설화는 신화적 인물인 유리왕이 부러진 칼을 찾아 부왕인 동명왕으로부터 부자관계를 인정받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신화이다. 신화에서 흔히 칼이 신(神)의 위엄과 군사적 지배권을 상징한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설화에서 친자를 확인하는 신물(信物)로 등장한 칼은 친자확인의 단순한 증표를 넘어서 유리가 칼이라는 신기(神器)를 손에 넣음으로써 군사적 지배권을 갖춘 왕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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