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위 러셀

피 위 러셀

[ Pee Wee Russell ]

요약 미국의 재즈클라리넷 연주자. 피아노와 드럼도 연주했다. 변덕스러우면서도 포착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스타일의 연주로 구슬픈 음조를 띠면서 가끔 으르렁거리거나 꽥꽥 소리를 내고 숨가쁘게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로 강조되는 것이었다. 가냘픈 몸 때문에 ‘피 위’라는 별명을 얻었다.
출생-사망 1906.3.27 ~ 1969.2.15
본명 찰스 엘즈워스 러셀
별칭 피 위
국적 미국
활동분야 음악
출생지 미국 몬태나주 메이플우드

본명은 찰스 엘즈워스 러셀(Charles Ellsworth Russell)이다. 미국 몬태나주(州)의 메이플우드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 마지못해 을 배우고 을 다루었는데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해지기 전에 피아노와 드럼도 연주했다.

변덕스러우면서도 포착된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스타일을 개발했는데, 일반적으로 구슬픈 음조를 띠면서 가끔 으르렁거리거나 꽥꽥 소리를 내고 숨가쁘게 중얼거리는 듯한 소리로 강조되는 것이었다. 1920년대 초 세인트루이스에서 허버트 버거(Herbert Berger)의 호텔 밴드와 함께 연주함으로써 데뷔했고 그의 가냘픈 몸 때문에 ‘피 위’라는 별명을 얻었다.

텍사스주(州) 휴스턴으로 옮긴 후 펙 켈리(Peck Kelley)의 에 가담했고 트롬본 연주자 잭 티가든(Jack Teagarden)을 만났으며,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온 뒤 재즈의 선구자로 꼽히는 프랭키 (Frankie Trumbauer)와 빅스 바이더베크(Bix Beiderbecke)가 포함된 여러 밴드에 가담했다. 1927년 뉴욕으로 옮겨 레드 니콜스(Red Nichols)의 화이브 페니스(Five Pennies)와 함께 처음으로 자신의 레코드를 취입했다.

1930년대에는 연주와 레코드 취입을 광범위하게 병행했는데 콜먼 호킨스(Coleman Hawkins), 에디 (Eddie Condon)과 함께 한 것이 특히 주목된다. 1940년대에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닉스에서 정규적으로 연주를 가졌다.
 
195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췌장염 때문에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으나 1952년에 연주를 재개했으며, 이후 델로니우스 몽크(Thelonious Monk), (Duke Ellington) 등과 함께 현대풍으로 연주했다. 러셀은 음악가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했으므로 현대풍으로 연주하는 것이 그 같은 꼬리표로부터 거리를 두는 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적절한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는 보통 컨던과 같은 스타일로 계속 연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라리넷의 전통적인 음악 어휘를 확대하고 시대 이후 클라리넷 최초의 모더니스트가 된 과도기적 인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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