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봉

효봉

[ 曉峰 ]

요약 현대의 고승으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하였다. 통합종단 초대 종정을 지냈다. 평소 계율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효봉스님 좌상

효봉스님 좌상

출생-사망 1888 ~ 1966.10.15
효봉(曉峰)
본명 찬형(燦亨)
별칭 일명 학눌(學訥)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평양

속성 이(李). 이름 찬형(燦亨). 호 효봉(曉峰). 일명 학눌(學訥). 평양 출생. 할아버지에게 을 배웠으며, 1913년 일본 법학부를 졸업했다. 귀국후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가 되어 법조계에서 일했다. 1923년 한 피고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후 '인간이 인간을 벌하고 죽일 수 있는가'라는 회의에 빠져 법관직을 버리고 3년 동안 전국을 방랑한 뒤 1925년 신계사 보운암에서 출가했다.

출가 후 고승을 찾아 전국을 순례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27년 금강산으로 돌아왔다. 이후 밤낮으로 수행을 거듭하였는데, 한번 앉으면 절구통처럼 움직이지 않아 '절구통 수좌(首座)'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법기암 뒤에 토굴을 짓고 들어가 수행하였으며 1931년 도를 깨닫고 1932년 유점사에서 와 보살계를 받았다. 이후 전국의 을 찾아가 한 철씩 보내는 등 정진을 거듭하였다. 1936년에는 당대의 고승 한암(漢巖)과 만공(滿空)으로부터 도를 인가받았다.

1937년부터 10여년간 송광사 삼일암에서 후학을 지도하면서 정혜쌍수(定慧雙修)에 대한 구도관을 확립하였다. 1947년 해인사 가야총림 방장(方丈)으로 추대되었고, 1954년 경상남도 통영군 에 (彌來寺)를 창건, 1956년 네팔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에 참가하고 돌아와 조계종 종회의장에 취임하였다. 1957년 종무원장이 되었으며 1958년 종정에 추대되고, 1962년 통합종단 초대 종정에 오르는 등 우리나라 불교계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평소 을 철저히 지키고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쳐 문하에서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다. 경상남도 밀양군 표충사 서래각에 머무르던 1966년 10월 15일 오전에 입적하였다. 후 나온 50과를 송광사와 표충사·용화사·미래사 등에 나누어 모셨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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