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 Stele for Buddhist Monk Tongil at Gagyeonsa Temple, Goesan , 槐山 覺淵寺 通一大師塔碑 ]

요약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에 있는 고려시대 탑비. 1999년 6월 23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지정종목 보물
지정일 1999년 6월 23일
소재지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태성리)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크기 전체 높이 4.7m / 비신 높이 258cm, 폭 128cm, 두께 25.4cm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 승려 통일대사(通一大師)의 탑비(塔碑)로, 각연사에서 동남쪽으로 400m 떨어진 산 속에 위치한다. 탑비(부도비)는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승탑(부도)과 함께 세워졌다. 비문의 글자가 대부분 마멸되어 정확한 건립 경위를 알 수 없으나, 958년(고려 광종 9)에서 960년(고려 광종 11)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대사

통일(通一)은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활동했던 승려이다. 통일신라 말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귀국하여 고려 태조의 존숭을 받았다. 왕실의 초청으로 궁궐에서 불법을 강론하였고, 말년에는 괴산 각연사에 머무르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대사가 입적하자, 고려 왕실은 그에게 '통일(通一)'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탑비의 구성과 양식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높이는 470cm이고 이 중 비신의 높이는 258cm이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본문 이미지 1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로, 비신과 이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귀부의 얼굴은 용의 형상으로 묘사되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귀부의 등에는 육각형 모양의 귀갑문(龜甲文)이 새겨져 있고, 비좌(碑座: 비신을 세우기 위해 홈을 판 자리)의 옆 면에는 안상(眼象)을 음각하여 장식했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본문 이미지 2

비신(碑身)은 탑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통일의 행적과 탑비의 조성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오랜 풍화로 인해 비문 대부분이 닳아 없어져 비문에 새겨진 3,500자 중 약 260자만 판독이 가능하다. 비문에 따르면 한림원(翰林院)의 학사이자 당대 명문가였던 김정언(金正彦)이 비문을 지었고, 통일대사의 제자 석총훈(釋聰訓), 석훈우(釋訓又) 등이 비석을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새겨진 글씨체는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楷書體)를 따라 썼으며, 누구의 글씨인지는 전하지 않는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본문 이미지 3

이수(螭首)는 탑비의 머리 부분으로 장식적인 역할과 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용·구름·연꽃 등을 조각하여 이수를 장식했고, 이수의 가장 윗부분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구슬인 보주(寶珠)를 올렸다.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 본문 이미지 4

가치 및 의의

괴산 각연사 통일대사탑비는 고려 태조의 존숭을 받은 승려 통일대사의 탑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비록 비문 내용 대부분이 판독 불가한 상태지만, 일부 내용을 통해 통일의 생애와 탑비의 제작 경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또한 비석에 쓰인 글자는 금석학·서예학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통일신라의 탑비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초기의 탑비로 귀부와 이수의 조각 장식은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99년 6월 23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참조항목

각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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