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관수정

장성 관수정

[ 長城 觀水亭 ]

요약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내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송흠(宋欽:1459∼1547)이 지은 정자.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장성 관수정

장성 관수정

지정종목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2월 29일
소재지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천방길 5 (내계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송병주가 소유하고 관리한다. 송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고, 자는 흠지(欽之), 호는 지지당(知止堂)·관수정이다. 영광(靈光)에서 태어났으며, 1480년(성종 11) 사마시를 거쳐 1492년 식년문과에 급제, 승문원에 있다가 연산군 때에는 은퇴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1516년(중종 11) 홍문관 정자(正字)에 복직하여 박사(博士)·지평(持平) 등의 관직을 두루 지냈다. 1528년에 담양부사, 1531년에 장흥부사를 거쳐 노모 봉양을 위해 전주부윤으로 옮겼다. 여러 관직을 거쳐 1534년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으나 다시 노모를 위해 왕의 특허로 집으로 돌아갔다. 101세를 산 어머니에 대한 효성으로 7차례나 상을 받기도 하였다.

관수정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뜻으로 주변에는 천방사와 용암천이 있어 경치가 아름답다. 정자의 내부에는 당시대 친우인 홍언필, 전안국, 성세창, 신광헌, 김인후, 임억령 등의 제영(題詠)이 다수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에 전퇴인 골기와의 팔작지붕 건물로 겹처마를 돌렸다. 근래에 새롭게 다듬어 쌓은 두벌대의 돌 기단 위에 복발형(覆鉢形)의 주춧돌을 놓고 원형 기둥을 세웠다. 기둥 머리에는 경사지게 깎은 보아지를 끼워 놓고 주두를 놓은 다음 퇴량을 걸쳐 얹었다. 이 퇴보 위에는 장혀받침 굴도리를 놓아 서까래를 받쳤다.

가구(架構)는 1고주 5량가로 양쪽에는 낮은 평주를 세웠다. 내진의 고주 끝과 대들보 위에 놓은 동자주 위에 종량을 두어 원형 판대공으로 종도리를 지지하도록 하였다. 오른쪽 2칸은 마루를 깔고 왼쪽 1칸은 방을 두었는데, 3면을 열개문으로 하여 개방적으로 보인다. 좌우 측면에는 낮은 평난간을 돌리고 배면은 벽으로 처리하였다. 충량과 선자서까래, 기둥 사이의 소로 받침 등에서 가구미가 돋보인다.

참조항목

삼계면, 송흠, 장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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