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정사

양계정사

[ 暘溪精舍 ]

요약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양계정사

양계정사

지정종목 시도민속문화유산
지정일 1990년 8월 7일
소재지 경상북도 영천시 창동길 7-18 (대전동)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이 지은 정사로, 정호인과 그의 아우 어봉(魚峰) 정호문(鄭好問)이 함께 학문을 닦고 공부하던 곳이다. 1640年에 창건되고 그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였다는 중재(中齋) 이호대(李好大)가 쓴 중건기문이 있다.

본래 정호인이 관직에서 일시 향리로 돌아와 경관이 좋은 지금의 위치에 초가 몇 칸을 짓고 문인들과 함께 양계에서 시를 읊으며 후학을 양성하고 《근사록(近思錄)》을 연구하던 학당이었다. 지금의 정사는 1700년대에 후손들이 그가 강학하던 자리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울창한 숲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고현천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어 주변경관이 빼어나다. 마을의 좁은 골목을 지나 정사 입구에 들어서면 최근에 건립된 관리사가 있고 이어 양계정사가 보인다. 입구에 담장과 사주문이 있었으나 지금은 유실되었다. 정사의 전체적인 배치는 동향의 ㄹ자형 배치인데, 조선 후기의 건물로는 보기 드문 특이한 양식이다.

13.58평의 규모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이며, 전면은 중앙 2칸이 마루이고, 좌우는 온돌방이며, 좌측의 꺾인 부분은 정면과 연결하여 온돌방과 우물마루의 고방으로 배치되어 있다. 고방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전체적으로 쪽마루를 둔 것이 특징이다.

자연석 기단과 초석 위에 각기둥을 세웠으며, 납도리·굴도리를 혼용한 3량가 홑처마집이다. 오천정씨 양계공파종중(烏川鄭氏暘溪公派宗中)이 소유하고 있으며, 정도용(鄭道容)이 관리자로 지정되어 있다.

정호인은 본관 영일(迎日), 자 자견(子見), 호 양계로, 임진왜란 때 영천(永川) 의병장으로 활약한 호수(湖수) 정세아(鄭世雅)의 손자이다. 1627년(인조 5)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호조정랑 등을 거쳐 양산(梁山)·합천군수·진주목사와 남원도호부사를 지냈다.

병자호란 때에는 영천 의병장으로 활동했으며, 대동법(大同法)을 정하여 부역을 균등하게 하는 등 선정을 베풀어 양산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 저서에 1790年(정조 14) 후손들이 간행한 《양계문집》 목판본이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청호서원(靑浩書院)에 배향되었다.

역참조항목

서부동, 대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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