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백세각

성주 백세각

[ 星州 百世閣 ]

요약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송희규(宋希奎)가 건립한 누각.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성주 백세각

성주 백세각

지정종목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82년 8월 4일
소재지 경상북도 성주군 고산1길 21-3 (초전면, 백세각)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크기 179.1㎡

1982년 8월 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송희규의 후손 송만수가 소유 관리하는 정면 7칸, 측면 7칸 규모의 맞배지붕 ‘ㅁ’자형 집이다. 송희규는 1546년(명종 1) 당시 세도가 윤원형을 탄핵하다가 역적으로 몰려 전라도 고산으로 유배되었다. 5년만에 풀려난 뒤 1551년에 백세각을 기공하여 이듬해 준공하였는데,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관리되고 있다.

누각 안에는 이이(李珥), 한호(韓濩), 채번암(蔡樊岩)의 친필이 각각 한 점씩 소장되어 있었는데 한호의 친필은 1970년에 도난당했다. 이 누각은 쇠못을 쓰거나 대패질을 전혀 하지 않고 구멍을 뚫어 싸리로 엮고, 목재를 자귀만으로 깎아 다듬어 만들었다. 건물 면적은 179.1㎡이고 내부는 화강석, 외부는 자연석 기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성주 관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1919년 3·1운동 당시 송준필(宋浚弼)을 비롯한 문인들이 독립청원장서 3천 장을 이곳에서 복사하여 성주 장날에 배포하였다. 여기서 국내 유림의 거두들이 모여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할 한국독립 진정서인 파리장서를 기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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