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 가산리 석장승

사천 가산리 석장승

[ 泗川 駕山里 石長丞 ]

요약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에 있는 장승. 1974년 12월 24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사천 가산리 석장승

사천 가산리 석장승

지정종목 시도민속문화유산
지정일 1974년 12월 24일
관리단체 사천시
소재지 경상남도 사천시 축동면 가산리 626-1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물 / 기타종교조각 / 민간신앙조각 / 석조

1974년 12월 24일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장승은 마을어귀나 절 입구 등에 세워 이정표·경계표로서의 기능과 액막이·수호신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장승은 위치나 신앙 대상자에 따라 사찰장승·마을장승·공공장승으로 분류된다.

가산리 석장승은 마을어귀에 있는 남녀 돌장승 8기이다. 가산마을은 원래 진주고을에 속한 해운창(海運倉)으로서, 진주를 비롯해 사천·하동·고성·의령 등 8개 지역의 조세를 모아 서울에 상납했다. 동학농민운동(1894)으로 조창이 폐지될 때까지 매년 조세로 징수된 곡식을 조운배에 싣고 3월 25일경 서울로 운송했다.

배가 출항하기 전, 각 고을 관원들이 모여 조곡이 서울에 무사히 도착하기를 기원하는 제를 올렸다. 그리고 돌장승에도 제물을 차려놓고 제사지냈다. 이것이 가산마을에 돌장승이 많았던 이유이다.

장승의 얼굴은 앞뒤로 조각되어 있는데, 남장승은 관복관모를 갖추었고 손에는 홀을 쥐었다. 여장승은 머리 위쪽에 뿔모양이 있어서 무덤 앞의 동자석(童子石)과 모습이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장승은 마을어귀에 남녀 2기를 세우는 데, 가산리의 장승은 무리지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의 장승은 주로 화강암이나 소나무로 만드는데, 남해안 갯가지역에는 특히 화강암으로 된 돌장승이 많았다. 가산마을의 장승을 만든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이 지역에 조창이 설치된 것이 1760년(영조 36)경이고 그때부터 장승을 만들었다고 본다. 형태는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82㎝에서 119㎝까지로 1m 안팎이며, 폭은 19㎝에서 35㎝ 정도이다. 요즘도 가산리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룻날 장승 앞에서 돼지머리와 제물을 차려 놓고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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